25 분 소요

1 제목의 오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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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모파상의 첫번째 장편소설로 모파상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두고 “「레미제라블」 이래 최고의 프랑스 소설”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잔느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17살이었을 때부터, 40대 후반이 될 때까지의 일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Une Vie」으로 번역하면 「어느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여자의 일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vie가 ‘인생’이라는 뜻이고 une은 영어에서의 a(어떤)에 해당하는 부정관사입니다. 그러니까, une vie는 a life, 그러니까 ‘어떤 인생’ 혹은 ‘어느 인생’으로 번역되는 것이 맞겠지요.

이것을 보통 「여자의 일생」이라고 번역하는 이유, 심지어는 영미권에서도 「A Woman’s life」라고 번역하는 이유를 감히 추정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어의 명사는 남성명사와 여성명사로 나뉘는데 vie는 여성명사입니다. 또한, 프랑스어의 부정관사는 남성명사일 때 un을 여성 명사일 때 une을 쓰는데, vie가 여성명사이므로 une vie라고 쓰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을 「여자의 일생」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une voiture (어떤 자동차) 혹은 une banane (어떤 바나나)라고 쓸 때에 여성을 염두하고 사용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un velo (어떤 자전거), un chat (어떤 고양이)라고 쓸 때에 남성이라는 의미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듯이요. 그러니까 une vie라고 하면 이것은 특정한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의미이지, 여자의 일생이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실제 이 소설이 ‘잔느’라는 한 여자에 대한 일생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의 제목은 「어느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못해도 「한 여자의 일생」이면 모를까 「여자의 일생」이라니, 분명한 오역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포스트의 제목은 「어느 인생」이라고 적었습니다. 다만, 민음사의 「여자의 일생」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2 「어느 인생」

2.1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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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19세기 초반의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한 시골마을입니다. 이때는 아직 여성에 대한 교육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그때문에 당시 귀족들은 교육을 위해 딸을 수녀원에 보내 교육받게 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수녀원에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거나, 예절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기독교적인 행동양식도 체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잔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녀원에서 몇 년을 지내던 잔느는, 단조롭고 갑갑한 수녀원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부모님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편지로 전합니다. 수녀원에서 나와 부모님과 함께 마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장면으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됩니다. 마차 안에서 잔느는 “앞으로 어떤 인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기대를 품습니다. 특히, “어떤 남자와 사랑하고 결혼하게 될까?”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다 읽고 보면, 이때 잔느가 거는 희망찬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만큼 잔느의 앞에 놓인 삶이 기구하고 파란만장했기 때문입니다.

수녀원을 나와 돌아온 곳은 그녀 소유의 저택이었습니다. 현대의 한국을 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수녀원을 나와 본가의 아파트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잔느의 아버지는 남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었고, 게다가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드넓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던 아버지는 돌아온 잔느를 위해 푀플이라는 이름의 성(城)을 선물했습니다. 두 개의 농장과 큰 저택으로 이루어진 이 성을 소유하게 된 잔느는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였습니다. 이러한 부유함은 잔느와 그 가족들로 하여금 선량하고 착한 성품을 형성하도록 했습니다. 부족할 것 없이 자란 그들은 항상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고, 너그러운 품성을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잔느의 부모님은 얼마간 푀플에 머무르며 딸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냅니다.

한편, 잔느의 그 남자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잔느가 맞딱뜨린 ‘우연’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의 의도이기도 했습니다. 교구 신부님의 소개로 알게된 쥘리앵 라마르 자작은 이곳에 온지 얼마되지 않은 인물로 결혼 적령기의 남자였습니다. 쥘리앵은 자연스럽게 잔느의 부모님과 친해졌고, 아버지는 머지 않아 잔느와의 약혼을 성사시킵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서, 주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잔느와 쥘리앵은 결혼식을 올립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결혼은 잔느쪽이 불리한 결혼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잔느는 풍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데 반해, 쥘리앵이 가진 재산은 적었기 때문입니다. 쥘리앵은 어쩌면 전략적인 결혼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선량한 성정을 지닌 잔느 아버지는 그런 점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잔느와 쥘리앵은 푀플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결혼 직후에 잔느는 웬일인지 행복감보다는 허전함과 환멸을 느낍니다.

그러자 자신에겐 더 이상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결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녀원에서 보낸 그녀의 청춘 시절은 미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공상으로 영일(寧日)이 없는 나날이었다. 그 시절에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요동치는 희망에 휩싸여 지냈다. 그 다음에 환상이 꽃피었던 엄격한 수녀원의 벽을 벗어나자마자, 그녀의 사랑의 기대는 곧바로 이루어졌다. 단 몇 주일만에 소망하던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에 이른 것이다. 급작스러운 결단으로 성사된 결혼과 같았다. 그 남자는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자기 품으로 그녀를 안아 와 버렸다.

그러나 이제 신혼 초의 달콤한 현실이 일상적인 현실로 변하려 했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매혹적인 불안에 막을 내리는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 이제 기대는 끝났다.

그러니 이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막연하게 느꼈다. 환멸, 꿈의 허물어짐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결혼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쥘리앵과의 관계가 변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명상적인 우수(憂愁)가, 산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환멸이 그녀의 마음 속에 퍼져나갔다. 그녀에게는 무엇이 필요했던가? 그녀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교적인 욕구도 그녀를 사로잡지 않았다. 쾌락에 대한 어떤 갈구도, 있을 수 있는 기쁨을 향한 어떤 충동조차도 없었다. 도대체 어떤 기쁨이 있단 말인가? 세월에 빛이 바랜 낡은 거실 의자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보기에 모든 것이 서서히 퇴색하고, 소멸하고, 희미하고 암울한 색조를 띠어 가는 것이었다.

쥘리앵과 그녀의 관계는 완전히 변했다. 그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로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마치 연기를 끝내고 본래의 자기 얼굴로 되돌아온 배우 같았다. 그는 잔느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심지어 말도 거의 걸지 않았다. 사랑의 흔적 일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가 잔느의 침실에 드는 밤은 아주 드물었다.

그는 재산과 가사(家事)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임대차 계약을 재검토하고 농부들을 들볶아대고 비용을 절감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농민 귀족처럼 하고 다녀서, 그에게서 약혼자 시절의 화려함과 우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구리 단추가 달린 얼룩투성이 낡은 벨벳 사냥복을 총각 시절 옷장에서 찾아내서는 그대로 항상 입고 다녔으며, 더이상 여자 마음에 들 필요가 없는 사람의 무심함으로 면도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잘 깎지 않은 그의 긴 수염이 그를 턱없이 추해 보이게 했다. 그의 손도 더 이상 말쑥하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그는 언제나 작은 잔으로 코냑을 네다섯 잔씩 마시는 것이었다.

잔느가 몇 마디 다정하게 허물을 지적하려고 했지만 “가만 내버려 두지 못하겠어?” 하고 그가 하도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바람에, 더이상 그에게 충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이런 변화에 대해 자신도 놀랄 만한 방식으로 태도를 정했다. 그녀에게 남편은 이제 낯선 자가 된 것이다. 그녀에게는 마음도 애정도 다 닫혀 버린 낯선 자가 된 것이다. 그처럼 만나서 사랑하고, 애정의 충동 속에서 결혼을 한 두 사람이, 나란히 잠자리를 같이한 적도 없는 것처럼 갑자기 서로 거의 모르는 사이처럼 된 것은 무슨 연유인가 하고 자문하면서, 그녀는 종종 사태를 곱씹어보았다.

어째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것에 대해 자신은 더욱더 괴로워하지 않는가?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그들 두 사람은 속은 것인가? 자신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는 것인가?

만약 쥘리앵이 여전히 아름답고 말쑥하고 우아하고 매력적이었더라면 그녀는 많이 괴로웠을까?

2.2 로잘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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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갈등은 충격적인 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잔느의 집에는 로잘리라는 이름의 하녀가 있었습니다. 잔느의 부모님은 로잘리를 마치 딸처럼 친근하게 대했으며 잔느와도 늘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런 로잘리가, 잔느의 결혼 이후 1년이 채 되기 전에, 배가 불러오더니 아이를 출산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잔느는 당황합니다. 힘들어하고 절망한 것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로잘리에게 다가가 “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해주면 그 아버지에게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우게 하겠다”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로잘리는 손사래를 치며 도망갑니다. 쥘리앵과 이 일을 논의하려 해도 쥘리앵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밝히는 것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역정을 냅니다. 그러니, 마침내 로잘리가 낳은 이 아이의 아버지가 쥘리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잔느가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사실은 이곳 저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만한 부정(不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잔느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쥘리앵의 비인간성은 여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실신한 잔느를 ‘열병에 걸린 것’이라고 둘러대며 사실을 은폐하려고 들었고, 심지어는 자신의 사생아를 낳은 로잘리를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로잘리의 자백으로 잔느의 부모님과 신부님 앞에서 진실이 밝혀집니다.

그때 방 안쪽 문이 열렸다. 로잘리가 정신없이 엉엉 울며 문틀에 매달려 들어오기를 거부했고, 남작은 그녀를 들이밀었다. 견디다 못한 남작이 그녀를 방 안으로 힘껏 떠다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서 있었다.

하녀를 보자마자 잔느는 벌떡 일어나서, 얼굴이 시트보다 더 하얗게 질려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의 고동으로 피부에 달라붙은 얇은 내의가 들썩거렸다.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메어 그녀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흥분으로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겨우 몇 마디를 토해 냈다. “나는 ······ 나는······ 너에게······ 물을······ 필요도······ 없어······ 네 그런 꼴만 봐도······ 내 앞에서······ 네가······ 부끄러워하는 꼴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단 말이다.”

숨이 막혀서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녀가 계속했다. “하지만 나는 전부 알고 싶다, 전부······ 전부를. 고해 성사처럼 하기 위해 신부님을 모셔 오게 했다, 알겠니.”

꼼짝 않고 서 있는 로잘리는 부들부들 떠는 두 손 사이로 비명같은 소리를 질렀다.

화가 치민 남작이 로잘리의 두 팔을 잡고는 난폭하게 얼굴에서 떼어내며, 침대 곁에 무릎을 꿇렸다. “말해봐라······ 대답해.”

막달라 마리아의 모델들이 취하는 자세처럼, 보닛을 비스듬히 쓰고, 앞치마를 바닥에 대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두 손으로 다시 얼굴을 가리고서, 로잘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때 신부가 그녀에게 말했다. “자, 얘야. 묻는 말을 잘 듣고 대답해라. 우리는 너를 해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잔느는 침대 가로 고개를 숙여 로잘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불시에 찾아갔을 때, 네가 쥘리앵의 침대에 있었던 게 사실이지?”

로잘리가 두 손 사이로 신음하듯 말했다. “예, 마님.”

그러자 갑자기 남작 부인이 숨 넘어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부인의 발작적인 흐느낌이 로잘리의 흐느낌을 뒤따랐다.

잔느가 하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언제부터 그 일이 계속되었니?”

로잘리가 중얼중얼 대답했다. “오셨을 때부터요.”

잔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이가 왔을 때부터라······ 그렇다면······ 봄부터란 말이냐?”

“예, 마님.”

그러자 잔느는 많은 질문 거리에 마음이 짓눌린 듯,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데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니? 그가 너에게 어떻게 요구하던? 어떻게 너를 차지했어? 그가 너에게 뭐라고 했니? 너는 어느 순간 어떻게 넘어갔어? 너는 어떻게 그 사람에게 몸을 맡길 수 있었어?”

이번에는 로잘리도 얼굴에서 두 손을 떼고, 대답할 필요를 느끼며 열성껏 대답했다.

“전들 알겠어요? 그분이 여기서 처음 저녁을 드시던 날 제 방으로 찾아오셨어요. 지붕 밑 방에 숨어 계셨던 거지요. 소동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전 소리도 지르지 못했어요. 그분이 저와 잤어요. 전 그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분 마음대로 했죠.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분이 점잖은 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자 잔느가 소리쳤다.

“그럼······ 네······ 네 아이는······ 그 사람 아이냐?”

로잘리가 흐느끼며 말했다.

“예, 마님.”

그 다음 두 사람 다 입을 다물었다.

로잘리와 남작 부인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낙담한 잔느는 자기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물방울이 소리 없이 그녀의 두 볼을 적셨다.

하녀의 아이와 자기 아이의 아버지가 같다니! 그너의 분노는 사라졌다. 그녀는 이제 우울하고, 둔탁하고, 깊숙하고, 한없는 절망감이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잔느는 변한 목소리, 눈물에 젖은, 우는 여인의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우리가 저기······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는······ 그때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니?”

하녀가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처음······ 첫날 밤부터 오셨어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잔느의 심장을 비트는 소리였다. 그렇게, 첫날 밤, 푀플로 돌아온 첫날 밤부터 그 사람은 하녀 애와 자려고 그녀 곁을 떠났던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녀를 혼자 자게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이렇듯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사건도 일단락되었습니다. 로잘리는 잔느의 집을 나가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나, 그동안 지냈던 정을 생각해 로잘리를 무작정 내쫓을 수 없었던 잔느의 부모님은, 소유하고 있던 농장 한 곳을 로잘리에게 주고, 또한 적당한 총각 한 명과 결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쥘리앵의 비인간적인 면모가 나타납니다.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로잘리와 그 자식에게 재산이 위임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합니다. 잔느 부모님의 재산은 결국 본인 소유의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잔느의 아버지는 원래의 계획대로 로잘리를 적당한 사내와 혼인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2.3 엄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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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결혼생활에서 잔느는 오히려 초탈한듯 무던하게 살아갑니다. 그녀는 이제 남편에 대해서 그 어떤 기대도 갖지 않았기에, 상처를 받는 일도 없습니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얼마 전에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로 집중됩니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고통끝에 힘들게 출산한 아기였지만, 그녀는 아이를 보는 순간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무서운 경련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너무나 극심한 경련 중에 ‘난 이제 죽는구나, 난 죽는다!’하고 그녀는 혼자 생각했다. 그러자 맹렬한 반항심이, 저주의 욕구가 그녀의 마음에 가득 차올랐다. 자신을 파멸시킨 이 남자와, 자신을 죽이고 나오려는 알지 못할 아이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이 솓구치는 것이었다.

그 무거운 짐을 떨쳐 버리기 위해 그녀는 최후의 안간힘으로 몸부림쳤다. 갑작스럽게 배 전체가 텅 빈 것 같았다. 그리고 고통이 진정되었다.

산파와 의사가 그녀 위로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몸을 만졌다. 그들이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곧이어, 그녀가 전에 이미 들은 적 있었던 숨 막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 그녀는 소스라쳤다. 뒤이어 갓 태어난 아이의 그 고통스러운 작은 비명, 그 연약한 울음소리가 그녀의 마음에, 가슴에, 기진맥진한 가련한 온몸 속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두 팔을 뻗치려고 했다.

그것은 그녀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환희의 빛이었고, 막 피어난 새로운 행복을 향한 도약이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해방과 평온과 행복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이었다. 그녀의 마음과 그녀의 육체가 되살아났고,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알고 싶었다! 너무 일찍 태어난 탓에 아이는 머리칼도 자라지 않았고 손톱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애벌레같이 작은 것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 얼굴을 찡그리고 살아 숨 쉬는 이 주름투성이 조산아를 만져 보았을 때,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이 그녀에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는 자신이 모든 절망으로부터 차단되어 구원받았으며, 다른 일에 정신을 팔 겨를 없이 오직 이 아이만 사랑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잔느에게는 한 가지 생각, 자기 아기 생각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랑에 환멸을 느끼고 희망에 속아 왔던 만큼, 더욱더 열성적인 극성 어머니로 갑작스럽게 변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기의 요람을 항상 자기 침대 곁에 놓아두어야 했다. 그리고 일어설 수 있게 되자, 그녀는 창을 마주 보고 앉아 가벼운 아기 요람을 흔들며 종일토록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유모에게 질투를 느꼈다. 목이 마른 어린것이 파르름한 정맥이 비치는 커다란 유방에 팔을 뻗어, 주름진 갈색 젖꼭지를 걸신들린 듯 입에 물 때면,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몸을 떨면서, 천연덕스럽고 힘센 시골 여자를 흘겨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여자에게서 자기 아들을 빼앗고, 아기가 탐욕스럽게 빨아 먹는 그 유방을 후려치고, 손톱으로 찢어발기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우아하고 섬세한 옷차림으로 곱게 꾸미기 위해 그녀는 손수 수를 놓아 주고 싶어 했다. 아기를 레이스 장식으로 휘감고, 멋진 보닛을 씌웠다. 그녀는 아기 얘기밖에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대화를 끊어 버리고서 배내옷이나 턱받이나 잘 만든 리본에 감탄을 늘어놓거나, 주위에서 하는 얘기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옷감 조각에 넋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녀는 옷감을 뒤집어 오래 보고, 더 잘 보려고 손을 쳐들어 다시 뒤집어 보다가는 “이걸 해 입히면 아기가 예쁠까요?” 하고 갑자기 묻기도 했다.

2.4 남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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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라마르 부부(잔느-쥘리앵 부부)는 근처에 살고 있던 푸르빌 백작 부부와 친하게 지내며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라마르 부부가 살던 곳은 인적이 드문 시골이었기에, 근처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푸르빌 부부 외에는 없었던 데다 나이도 얼추 비슷했기에, 이 두 부부는 다정한 친분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 속에서도 불행은 찾아왔는데, 쥘리앵이 몰래 푸르빌 씨의 부인, 질베르트과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 장갑 한 짝과 채찍 두 개가 밟힌 흔적이 있는 잔디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거기 앉아 있다가, 말을 남겨 둔 채 멀리 가버린 것이었다.

두 사람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의아해하면서 그녀는 십오 분, 이십 분 동안 기다렸다. 그녀가 말에서 내려 나무둥치에 몸을 기대고 가만히 서있는데, 새 두마리가 그녀를 보지 못하고 바로 곁의 풀숲에 내려앉았다. 그중 한마리가 다른 놈 주위를 깡충거리며 맴돌더니, 날개를 펼쳐 들어 흔들고, 머리 숙여 인사하면서 짹짹거렸다. 그러더니 두 마리 새는 갑자기 짝짓기에 돌입했다.

마치 이런 일을 몰랐던 것처럼 잔느는 몹시 놀랐다. 그러고나서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맞아, 봄이 왔구나.” 그다음 다른 한 가지 생각, 하나의 의혹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녀는 장갑과 채찍과 내버려 둔 말 두 필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달아나고 싶은 욕구를 억제할 수 없어 난폭하게 말안장에 뛰어올랐다.

그녀는 이제 푀플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녀는 머리를 짜내어 추론해 보고 사실을 연결해 보고 상황을 비교해 보았다. 어찌 좀 더 일찍 짐작하지 못했던가? 어찌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던가? 쥘리앵의 외출, 다시 시작된 그의 옛날 같은 멋부리기, 차분해진 그의 기분 같은 걸 왜 진작 이해하지 못했던가? 잔느는 또 질베르트의 신경질적인 거친 행동, 그녀의 과장된 교태, 그리고 얼마 전부터 그녀가 빠져 있는 것 같은 일종의 행복한 상태를 상기해 보았다. 백작은 아내의 그런 상태를 몹시 기뻐했다.

빨리 달리는 것은 생각을 방해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잔느는 이제 말을 천천히 몰았다.

처음의 흥분 상태가 지나가자, 그녀 마음은 거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질투심도 증오감도 없었고, 경멸감만 일 뿐이었다. 그녀는 쥘리앵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에 관해서라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친구같이 지낸 백작 부인의 이중 배반은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배신자이고, 거짓말쟁이고, 위선자인 것이다. 그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은 때때로 죽은 이들을 슬퍼하는 것만큼 환상에 대해서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잔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서, 일상적 감정에는 마음을 닫아걸고, 폴과 부모님들만 사랑하며 지내기로 결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태연한 얼굴을 하고서 견뎌 내면 될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아들에게로 달려가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한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미친듯이 아기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이 불륜의 두번째 피해자인 푸르빌 백작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한 사람이었으나, 순수한 성정을 지닌 호인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태를 목격했을 때, 충동적으로 행동합니다. 그 결과로, 쥘리앵과 질베르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 오후 (5월 초순이었다.) 잔느가 난롯가에서 책을 읽는데, 갑자기 드 푸르빌 백작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하도 황급히 오고 있어서, 잔느는 무슨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느가 그를 맞으러 서둘러 내려갔다. 그를 마주 대하자, 그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집 안에서만 쓰던 모피를 덧댄 챙 달린 큰 모자를 쓰고, 사냥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이 너무 창백해서, 평소에는 불그레한 그의 혈색과 잘 구분되지 않던 적갈색 콧수염이 그 순간에는 불꽃같이 보였다. 그는 험상궂은 눈동자를 정신없이 사방으로 굴렸다.

그가 중얼거렸다. “제 집사람이 여기 와 있죠?” 잔느가 당황하여 대답했다. “아녜요, 오늘은 뵙지 못했어요.”

그러자 그는 마치 두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모자를 벗더니, 손수건을 꺼내 기계적으로 몇 차례 이마를 닦았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젊은 부인에게로 다가갔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입을 벌리고, 무슨 끔찍한 괴로움을 그녀에게 털어놓으려는 듯 말을 꺼낼 태세였다. 그러더니 그는 멈춰 서서, 잔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헛소리처럼 몇 마디 내뱉었다. “한데 당신 남편이······ 당신도 역시······.” 그리고 그는 바다 쪽으로 달아났다.

잔느는 그를 소리쳐 부르고, 애원하면서, 그를 막으려고 뒤쫓아 달려갔다. 그녀는 두려움으로 가슴을 떨며 생각했다. “그가 다 알고 있구나! 어떻게 하려는 걸까? 오! 두 사람을 발견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잔느는 그를 따라갈 수 없었고, 그는 그녀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를 확신하는 그는 주저 없이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그는 도랑을 건너뛰고, 거인다운 발걸음으로 갈대숲을 성큼성큼 지나 절벽에 다다랐다.

잔느는 나무들이 자라는 비탈에 서서, 오랫동안 그를 눈길로 뒤쫓았다. 이윽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번뇌로 가슴을 죄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달리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바다에서 파도가 요동치고 있었다. 두터운 먹구름이 미친듯한 속도로 다가와서 지나가고, 또 다른 구름이 뒤쫓아 오곤 했다. 그 구름 하나하나가 해변에 맹렬한 기세로 소나기를 퍼부었다. 바람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신음했고, 풀잎을 쓰러뜨리고, 어린 작물을 눕혔으며, 거품 덩어리 같아 보이는 하얀 큰 새들은 내륙 멀리까지 휩쓸어 갔다.

계속 쏟아지는 소나기가 백작의 얼굴을 때렸고, 흠뻑 젖은 그의 두 볼과 콧수염에서는 물이 줄줄 흘렀으며, 그의 귀는 요란한 빗소리로 가득 찼고, 그의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다.

그의 앞 저 멀리에, 보코트의 깊은 협곡이 드러나 보였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텅 빈 양(羊) 목장 곁에 서 있는 목동의 오두막집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말 두 필이 이동식 집 끌채에 매여 있었다. 이런 폭풍우 속에서 남의 눈을 염려할 까닭이 있겠는가?

말들을 보자마자 백작은 땅바닥에 엎드려 두 손과 무릎으로 기었다. 짐승 털 모자를 쓴 그의 진흙투성이 거구는 괴물과도 흡사했다. 외딴 오두막까지 기어간 그는 판자 틈을 통해 들키지 않기 위해 오두막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를 보자 말들이 동요했다. 그는 손에 펴 들고 있던 칼로 말고삐를 천천히 잘랐다. 그때 갑자기 돌풍이 불었고, 바퀴 위의 오두막이 흔들리며, 그 통나무집의 비스듬한 지붕에서 쏟아져 내리는 우박에 얻어맞은 말들이 도망쳤다.

그러자 백작은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일으켜 문 아래쪽에 눈을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 같았다.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러더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진흙투성이인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미치광이 같은 동작으로 그는 밖에서 덧창을 잠그는 빗장을 지르고는, 끌채를 그러잡고서 박살이라도 내려는 듯이 그 오두막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별안간 끌채를 둘러메고, 큰 키를 숙여서 혼신의 힘을 다해 소처럼 오두막을 끌어당기면서 숨을 헐떡였다. 그는 이동식 오두막과 그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가파른 비탈 쪽으로 끌고 갔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주먹으로 판자벽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비탈 꼭대기에 이르러 백작이 손을 떼자, 가벼운 오두막은 경사진 언덕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 오두막은 미친듯이 휩쓸리며 굴러떨어졌다. 점점 더 가속도가 붙어 튀어 오르고, 짐승처럼 비틀거리고, 끌채가 땅에 부딪히기도 했다.

도랑에 웅크리고 있던 늙은 거지가 그것이 제 머리 위로 튕겨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나무 궤짝 안에서 질러 대는 끔찍한 비명 소리도 들었다.

갑자기 바퀴 하나가 부딪혀 떨어져 나가자, 오두막은 옆으로 넘어지더니, 마치 기초가 부서진 집이 산꼭대기로부터 굴러떨어지듯 공처럼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협곡의 가장자리에 이르자, 오두막은 곡선을 그리며 튀어 오르더니 바닥에 떨어져 달걀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오두막이 돌바닥 위에 내동댕이쳐져 부서지자마자, 그것이 굴러가는 광경을 보았던 늙은 거지가 가시덤불을 헤치고 더듬더듬 내려갔다. 그는 촌사람다운 조심성으로 행동해서, 박살 난 궤짝에는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가까운 농가로 가서 사건을 알렸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그들이 잔해를 들어 올리니, 시체 두 구가 보였다. 시체는 상처투성이에, 으깨지고, 피투성이였다. 남자는 이마가 깨지고 얼굴 전체가 으스러져 있었다. 여자는 충격으로 턱이 떨어져서 늘어져 있었다. 부러진 그들의 사지는 살 아래에 뼈가 없는 것처럼 물컹거렸다.

2.5 로잘리와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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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악덕한 남편이었을지라도 남편을 잃게 된 잔느가 받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잔느에게는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가 될 만한 세 사람이 남아있었습니다. 그의 아들 과 아버지 시몽 남작, 그리고 리종 이모였는데요. (그의 어머니는 쥘리앵이 사망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사건 이후, 잔느는 가족들과 함께 살며 폴을 키우는 데 전념하게 됩니다. 그때까지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잔느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매우 큰 기쁨을 안겼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또 한차례 다가오게 됩니다.

폴은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만 받으며 자랐기에, 그 시기에 응당 받아야 할 지식 교육과 예절 교육은 충분히 받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숙학교에 들어간 폴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여하튼 폴은, 유급을 거듭한 끝에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채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닙니다. 성년이 되자, 도박과 여색에 빠져 수많은 빚을 만들었고 그 빚은 당연히 어머니 잔느와 할아버지 시몽 남작에게로 왔습니다. 집에 돌아오지도 않은 채로, 유곽에 드나들거나 섣불리 사업을 벌였다가 파산하는 폴 때문에 가세는 기울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 시몽 남작과 리종 이모가 별세합니다.

잔느의 희망이었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죽고, 나머지 한 사람인 폴은 계속 방탕한 삶을 지내고 있으니, 잔느는 그 어떤 희망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늘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잔느에게는, 파산하여 길거리에 내몰리는 것 말고는 다른 미래가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리종 이모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뜻밖의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겨울이 끝나 갈 무렵, 이제 예순여덟 살이 된 리종 이모가 걸린 기관지염이 폐렴으로 악화되었다. 그녀는 “가련한 잔느, 불쌍히 여기시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마.” 하고 중얼거리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잔느는 묘지까지 이모를 따라가서, 관 위에 흙이 덮이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고통 받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자기 역시 죽고 싶다고 느끼며 주저앉아 있는데, 건장한 농부 아낙이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더니 어린애 다루듯이 데리고 갔다.

성으로 돌아온 잔느는 노처녀의 임종을 지키느라고 닷새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자기를 다루는 그 낯선 시골 여자에게 이끌려 아무 저항 없이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피로와 괴로움에 짓눌려 기진맥진한 상태로 곯아떨어졌다.

잔느는 한밤중에 잠이 깼다. 벽난로 위에서 야등(夜燈)이 타고 있었다. 한 여자가 안락의자에서 자고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구인가? 잔느는 그 여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유리잔 속의 기름 위에 떠 있는 심지에서 가물거리는 불빛 아래 그 여자의 모습을 잘 보기 위해, 잔느는 침대 가장자리로 몸을 굽혀 살펴보았다.

한데 그 얼굴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서? 그 여자는 머리를 어깨 위로 기울이고 보닛을 바닥에 떨어트린 채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마흔 아니면 마흔 다섯 살쯤 되어 보였다. 체격이 건장하고, 혈색이 좋고, 어깨가 딱 벌어진, 힘센 여자였다. 널찍한 두 손이 의자 양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반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큰 불행에 뒤따르는 열병 같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뒤숭숭한 정신 상태 가운데에서 잔느는 그 여자를 고집스럽게 쳐다보았다.

분명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예전에 보았던가? 최근에 보았던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강박관념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안달이 나게 했다. 잠든 여자를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그녀는 가만히 일어나서 발끝을 세우고 다가갔다. 그 여자는 묘지에서 잔느를 일으키고, 자리에 눕혀준 여자였다. 그 사실은 흐릿하게 기억에서 떠올랐다.

그런데 자기 일생 동안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시기에 이 여자와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단지 어제의 희미한 기억 가운데에서 그 여자를 알았던 것처럼 믿는 것인가? 그런 데다가 어떻게 이 여자가 자기 방에 와 있는가? 그리고 왜?

그 여자는 눈을 치뜨더니, 잔느를 알아보고 급히 몸을 일으켰다. 두 여자는 마주 보고 섰는데, 너무 가까이 있어서 가슴이 서로 스쳤다. 낯선 여자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아니, 왜 일어나셨어요? 이 새벽에 감기 들려고요. 다시 누우셔야 해요.”

잔느가 물었다. “누구시죠?”

그러나 그 여자는 팔을 벌려 잔느를 안아서 들어 올리더니, 남자 같은 힘으로 다시 침대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침대 시트 위에 가만히 잔느를 눕히더니, 잔느 위에 거의 눕다시피 몸을 기울이고서 잔느의 두 볼과 머리와 눈에 정신없이 키스를 퍼부으며 울기 시작했다. 잔느의 얼굴을 눈물로 흠뻑 적시면서 그 여자가 중얼거렸다. “불쌍한 주인님, 잔느아씨. 가여운 마님, 저를 못 알아보시겠어요?”

그러자 잔느가 “로잘리, 너로구나.” 하고 소리쳤다. 잔느는 로잘리의 목을 두 팔로 감싸고 키스하며 꼭 끌어안았다. 두 여자는 서로 얼싸안고 흐느끼며, 눈물범벅이 되어 팔을 풀 줄 몰랐다.

로잘리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서 “자, 고정하세요. 감기 들면 안돼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불을 챙겨서 침대 가장자리에 다시 집어넣고, 베개를 옛 여주인의 머리 밑에 놓아 주었다. 잔느는 마음속에 떠오른 옛 추억에 전율하며 계속 흐느껴 울었다.

잔느가 이윽고 “그래, 어떻게 다시 왔어, 가엾은 애야?” 하고 물었다.

로잘리가 대답했다. “아무려면 지금 마님을 이처럼 혼자 내버려 둘 수 있겠어요.”

잔느가 말을 이었다. “너를 잘 볼 수 있게 촛불을 켜봐.” 로잘리가 촛불을 켜서 침대 옆 테이블로 가져오자, 두 여자는 오랫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잔느가 옛 하녀에게 손을 내밀며 속삭였다. “얘, 네가 하도 변해서 너를 못 알아볼 뻔했어. 하지만 나만큼은 변하지 않았지.”

헤어질 때는 젊고 아름답고 싱싱했는데, 이제 메마르고 시들어버린 이 백발 여자를 바라보며, 로잘리가 대답했다. “잔느 마님, 정말 변하셨어요. 엄청나게 변하셨어요. 그러나 서로 만나 보지 못한 지 이십사 년이나 되었다는 걸 생각해 보세요.”

2.6 기차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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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잘리의 등장으로 잔느의 삶은 드디어 추락을 멈춥니다. 로잘리는 잔느의 경제권을 위임받아, 이자를 청산하고 토지를 매각하여 더이상 잔느가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것을 막습니다. 이 때에, 푀플 성도 팔아버리고 조그만 집으로 이사가게 됩니다. 그 옛날, 수녀원을 나왔을 때 부모님께서 마련해주셨던, 수많은 추억이 담긴 푀플 성을 팔아야 했던 것은 잔느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지만, 적어도 이제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로잘리도 폴의 난봉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로잘리는, 잔느가 폴에게 무분별하게 돈을 송금하는 것을 저지하여, 온정 때문에 집안이 망하는 사태는 막았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향한 잔느의 걱정은 그칠 줄을 몰랐고, 마침내 로잘리는 파리에 사는 폴과, 그의 아내가 낳았다는 폴의 딸을 데려오기 위해 파견됩니다. 하지만, 로잘리도 폴은 데려오지 못했고, 다만 품속에 조그만 생명을 하나 얻어옵니다. 기차역에서, 잔느가 로잘리에게서 건네 안은 손녀를 받아안고 문득 생명력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잔느는 점점 근접하면서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한없이 뻗어 있는 직선 레일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플랫폼에 서 있었다. 그녀는 때때로 시계를 보았다. 아직 십 분. 아직 오 분. 아직 이 분.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먼 선로 위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얀 반점이, 연기가 되어 눈에 들어왔고, 연기 아래로 까만 점이 나타나 점점 커지더니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거대한 기계는 마침내 속도를 늦추더니, 승강구를 골똘히 살펴보는 잔느 앞으로 칙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문이 몇 개 열렸다. 작업복을 입은 농부, 바구니를 든 촌 아낙네, 펠트 모자를 쓴 소시민 등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마침내 헝겊 꾸러미 같은 것을 품에 안은 로잘리가 보였다.

잔느는 로잘리에게 다가가고 싶었으나, 다리에 너무 힘이 빠져서 넘어지지나 않을까 겁이 났다. 하녀가 그를 알아보고, 평소 같은 침착한 태도로 다가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마님. 다녀왔습니다. 쉽지는 않았어요.”

잔느는 중얼중얼 물었다. “그래, 어찌 됐어?”

로잘리가 대답했다. “그 여자는 간밤에 죽었어요. 두 사람은 결혼했고요. 여기 아기가 있습니다.” 로잘리는 헝겊에 싸여 보이지는 않는 아이를 내밀었다.

잔느는 무의식적으로 아기를 받아들었고, 두 사람은 역을 나와 마차에 올라탔다.

로잘리가 말을 이었다. 폴 도련님은 장례가 끝나는 대로 올 거에요. 내일 같은 시각 기차가 되겠죠.

잔느는 “폴······.” 하고 중얼거리더니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태양이 지평선으로 넘어가며, 군데군데 금빛 유채꽃과 핏빛 개양귀비꽃이 널려 있는 푸르른 들판을 밝게 물들였다. 생기가 움트는 고요한 대지 위에 무한한 평온이 감돌았다. 농부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몰자, 마차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잔느는 제비들이 불화살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있는 자기 앞의 허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드러운 포근함이, 생명의 열기가 옷을 통과해 다리에 이르더니, 살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녀 무릎 위에 잠들어 있는 작은 생명의 체온이었다.

그러자 무한한 감동이 그녀에게 밀려왔다. 그녀는 갑자기 포대기를 벗겨 아직 보지 못한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자기 아들의 딸이었다. 밝은 빛에 놀란 연약한 생명이 입을 오물거리며 파란 눈을 떴다. 잔느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품 속에 들어올려,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로잘리는 기뻐하면서도 퉁명스럽게 잔느를 제지했다. “자, 자, 잔느 마님, 그만하세요. 아기가 울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자기 자신의 생각에 화답하는 것처럼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3. 페시미즘(pessim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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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단편에 비해, 장편소설을 정리하는 건 꽤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군요. 그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소설의 주요한 부분들을 다시 읽고 적으면서, 이 소설이 주는 조용한 감동과 울림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해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1) 한 가지는, 잔느의 심정에 깊이 몰입되어 그 슬픔과 비극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며 잔느를 동정하고 연민하는 것입니다. (2) 다른 또 한가지는, 잔느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잔느의 비극은, 결국 잔느 본인과 그 아버지가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전자의 관점으로 읽었지만, 두번째로 읽었을 때에는 후자의 관점도 같이 견지하게 되었는데요.

세상이 원래 이렇게 치열하고, 잔인하며, 무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러니까, 악인은 늘 도처에 있고 불륜과 나쁜 일은 항상 일어난다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잔느의 비극은, 그녀가 너무 세상 물정을 몰라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을 환기시키는 장치는 소설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합니다. 잔느는 쥘리앵의 부정(不淨)을 경멸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읽게 된 편지 뭉치에서 어머니가 정부(情夫)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아버지 시몽 남작은 쥘리앵의 로잘리를 임신시킨 일에 분개하지만, 정작 그런 쥘리앵을 끝까지 몰아세울 수 없었던 것은 시몽 남작 또한 과거에 비슷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귀하게 자란 폴보다는 사생아로 태어난 로잘리의 아들 르코크가 세상에 더 쓰임새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 독자는 잔느와 폴보다는 로잘리와 르코크를 더 긍정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이 소설을 읽어보아도, 잔느의 감정에 동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녀의 불행을 같이 슬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 잔느와 그의 아버지가 쥘리앵의 폭력적인 심성을 목도하는 장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장면, 폴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집안이 기우는 것을 차차 알게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잔느의 마음이 되어 같이 당황하고, 슬퍼하게 됩니다. 끊임없는 추락 끝에 다다른 리종 이모의 장례식에서 로잘리가 나타나 잔느를 부축하는 순간은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만합니다. 로잘리의 등장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 정말 두근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의 잔느의 절망적인 심정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갔던 로잘리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면 깊은 슬픔과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1), (2)의 관점은 꼭 서로 배치되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잔느가 순진했던 것도 맞고, 또한 불운이 그녀에게 닥친 것도 맞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자의 일생」의 역자는 모파상이 받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추종자라고 할 수 있는 모파상은 지상의 모든 꿈을 파괴하는 작가로서, 그의 작품에서는 인생에 대한 어떤 신뢰의 요소나 위안의 여지를 발견하기 힘들다. 「여자의 일생」의 편협한 광신자 톨비악 신부의 예가 보여주듯 종교도 고통스러운 인생에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모파상은 신을 부정하고, 종교를 속임수로 매도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세계는 알 수 없는 맹목적인 힘의 연쇄이며 인간은 그저 짐승보다 약간 우월한 존재 정도이고 진보라는 것도 헛된 공상에 불과할 뿐이다. 모파상은 그의 스승 플로베르처럼 예술에 대한 신앙을 간직한 흔적도 없다.

철저한 페시미스트 모파상이 창조한 소설 세계 「여자의 일생」은 인생의 환멸에 바쳐진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작품 서두의 아름다운 처녀 잔느와 거의 폐인처럼 돼 버린 작품 말미의 불행한 노파 잔느의 모습이 이루는 극적 대조만으로도 독자는 「여자의 일생」을 일생에 대한 비극적 기록으로 읽기에 충분할 것이다. 현실의 인생이 그렇듯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은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을 차례로 잃는다. 별로 동정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남편 쥘리앵의 죽음은 차치하더라도, 어머니의 죽음에 뒤이어 어리석은 외손자가 가한 타격 때문에 아버지가 쓰러지고, 또 한 명의 가련한 여인인 리종 이모가 잔느를 가엾어하면서 죽어 간다. 그리고 기르던 개 마사르크의 죽음까지 삶의 덧없음에 대한 비감을 자아내는 것 같다. 아들 폴은 죽음과 무관한 부재이기 때문에 잔느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라는 얼마간 타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소설 마지막 로잘리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인생에 대한 아무런 환상이 없는 증언이다. 그리고 소설 주인공 잔느는 한 여인상이기를 넘어서서 모파상의 비관적 비전에서 조명된 인간의 조건을 형상화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짙은 페시미즘의 우수(憂愁)가 소설 「여자의 일생」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페시미즘적 편향의 감성, 그것은 인생을 환상 없이 바라보는 성숙한 감성이며, 또 가장 프랑스적인 감성의 속성이 아니겠는가. 「여자의 일생」을 창조한 작가 모파상은 그 어떤 작가보다도 프랑스적인 감성을 예술로 적절히 승화시킨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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