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분 소요

0. 오랫동안 읽은 책

이 책을 처음 펼친 건 9년 전, 2016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의 나는 종암동의 한 원룸에 살면서 수학 과외를 업으로 하며 지냈다. 수입이 안정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유로웠던 날들이었다.

그 때도 책 읽는 건 좋아했었다. 어느 날은 청량리 영풍문고에 가서 이 책, 민음사의 「등대로」를 샀던 것 같다. 그때 샀던 영수증을 지금까지도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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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샀던 동기는 뭐였을까.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가 유명하다고 들어서 무심코 서가에서 집어들었을 것이었다. 그리곤 읽었다. 일과가 끝나고 난 어느 밤에 종암동 맥도날드에 가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좁은 원룸에서 읽기는 싫고 카페에서 읽기에는 돈이 드는데 맥도날드는 돈이 덜 드는 데다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맥도날드를 택했던 것이다.

문제는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인물별로 메모도 하고 줄거리도 정리해가면서 세 번 정도를 시도했으나, 끝내 5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18년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여전히 과외를 하며 지내고 있었으나 이제는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때, 나는 새로운 취미로 독서모임을 다니게 되었다. 역삼동에 있었던 ‘아그레아블’이라는 독서모임에서, ‘민음사 문학살롱’이라는 모임에 2주마다 한 번씩 참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버지니아 울프를 다시 만났다. 지정도서로 「자기만의 방」을 읽게 되었는데 매우 재밌었던 것이다. 여자가 독립적인 삶을 살아나가려면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면) 본인 소유의 방과 연 500파운드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제도 주제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울프가 서술해나간 영국 여성작가의 역사였다. 특히 1800년대의 걸출한 네 명의 여자 작가를 소개했던 것이 가장 재미있었고, 언젠가는 그 네 명의 작가를 모두 읽어봐야지 하는 내 숙제로 남아서 실제로 나는 그 이후에 에밀리 브론테와 조지 엘리엇의 책들을 읽었다.

다시 또 시간이 흘러 2022년이 되었을 때, 나는 대학원에 소속되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2019년 말에 들어간 대학원에서 2020년 초부터 지도교수님과 석박통합과정의 공부를 시작했지만 여러 내적인 또는 외적인 어려움 때문에 방황하고 있었다.

그 때에는 한 작가의 책을 세 권 또는 네 권 읽는 것을 목표로 하여 책을 읽곤 했었다. 처음에는 모파상의 『모파상 단편집』, 「어느 인생」, 「벨아미」를 읽었고 (이때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이 깃허브 블로그의 첫 글들이다.) 두번째로는 토마스 하디의 「테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이름없는 주드」를 읽었다. 세번째로 선택한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였다. 「자기만의 방」을 다시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전부터 읽고 싶었던 울프의 대표작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특이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던 「올랜도」를 읽었다. 그리고 나서 대망의 「등대로」를 다시 도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읽는 것은 어려웠다. 100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릴리 브리스코와 윌리엄 뱅크스가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계속 보다가, 도저히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화딱지가 나서 세 번 정도를 시도했다가 책읽기를 그만두었다.

또 시간이 흘러 올해, 2025년이 되었다. 나는 몇 번의 직장을 옮겨다니다 올해에는 8월부터 새로운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집에서 양재까지 출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터라 출퇴근길의 편도 1시간 10분의 시간동안 무얼 할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duolingo로 프랑스어 공부하는 것을 택했다. 프랑스어 공부는 늘 그렇듯 재미있었지만, 이어폰을 계속 귀에 끼고 있다보니 귀가 아팠다. 그래서 출퇴근길에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래 읽으려던 책은 「등대로」는 아니었다. 나는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은 빨강」을 읽으려 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은 책을 반납한 상태였고, 출근길의 급박한 그 시점에, 나는 책장에 꽂혀 있었던 책들 중 「등대로」를 골라 잡았다. 그리고 그날 출근길부터 100페이지 즈음을 펼쳐 이어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잘 읽혔다. 그렇게 읽어나가다가는 책의 1부를 다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는 2부와 3부도 읽어내게 되었다.

그리고 한 독서모임에서 나는 「내이름은 빨강」으로 지정도서 모임을 진행하려 했었다. 하지만 9년 만에 읽은 이 「등대로」를 가지고 모임을 진행하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모임 진행 준비를 위해서, 그리고 또 더 깊게 읽고 싶은 마음에 (처음에는 민음사 버전의 「등대로」를 읽었던 것인데) 열린책들 버전의 「등대로」도 읽었다. 열린책들 버전은 민음사 버전보다 좀 더 의역이 되어 있어서 읽기가 더 수월했지만,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리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열린책들의 「등대로」도 다 읽고 나서, 다시 민음사 버전의 등대로를 읽다가 지정도서모임 날짜(11/21)가 되어 모임을 진행하고 왔다.

그리고 지금은, 모임을 진행하기 위해서 발제문을 적거나 자료를 찾은 것을 토대로 블로그에 글을 적어보려 한다.

1. 의식의 흐름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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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의 소설들이 대체로 ‘사실주의 소설’로 분류된다면 1900년대 초반에는 모더니즘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들 중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사뮈엘 베케트 등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종래의 사실주의 소설처럼, 객관적인 사실들을 위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물의 의식을 상세히 따라가면서 서술하는 방식을 말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젊은 예술가의 초상」,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사뮈엘 베케트의 「몰로이」,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이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분류되는 듯하다.

나는 20대 중반쯤부터 가끔 일기를 쓰곤 했다. 일기를 쓰다 보면 육하원칙에 맞게 사실적으로 쓰고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곤 한다. 어떤 일이 있었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다음 시점에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하는 것을 시간 순으로 혹은 인과관계를 들어서 잘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너무 사실적으로 쓰려다보면 정말로 내가 일기를 쓰게 된 계기, 마음이 동해 키보드를 잡은 동기로부터는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컴퓨터를 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느덧 마음 속에서 휘발되고, 단조롭게 과거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게 되는 것이다.

일기에 써야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도 필요할 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주관적인 감정과 감상, 인상들 그리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단상들이야만 한다. 제3자가 보기에는 의미가 없어 보일 지 몰라도 써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일기를 쓰면서 생각했던 적이 있다.

울프의 생각도 비슷한 것은 아니었을까, ‘열린책들’의 해설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열린책들(해설), p. 288] 울프는 1919년 에세이 「현대 소설론Modern Fiction」에서도 개진했듯이, 현실은 전통 소설에서 묘사하는 바와 같이 사실주의적인 세부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인상들의 소나기〉라고 보며,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그런 삶의 실체를 그려 내려 한다. 다시 말해, 부모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들을 이야기하는 대신, 무수한 단면을 지닌 의식의 흐름으로 부모의 온전한 초상을, 그들이 살았던 삶을 그려내면서 삶과 죽음과 세월의 의미를 천착하려는 것이다.

작년,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게 되면서 나도 덩달아 한강 작가의 책들을 두 권 정도 읽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기도 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한강의 글이 너무 어둡다고, 혹은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게 왔다갔다 한다고 비판했다. 한강 작가의 쓰는 방식도 논리정연하다거나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작법이 아니고서는 「희랍어 시간」에서 그렇게 섬세한 디테일을 그려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2. 소설의 배경

2.1 공간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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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 본인의 자전적인 면이 많이 반영된 소설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울프가 런던 태생인 것과는 다르게 소설 속 공간적인 배경은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의 스카이(Skye) 섬이다. 화가 릴리 브리스코는 섬의 언덕에서 저멀리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소설의 제목에는 ‘등대’라는 단어가 나오고, 책의 후반에는 어부들과도 함께한다.

2.2 다복한 가족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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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에는 아이를 많이 낳는 ‘다복한’ 가족이 이상적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구성원이 많은 이 공동체를 케어했던 건 그 집의 안주인이자 주인공인 램지 부인 혹은 울프의 어머니였다. 램지네 공동체의 또다른 특징은 ‘식객’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찰스 탠슬리, 폴 레일리, 민타 도일, 오거스터스 카마이클, 릴리 브리스코, 윌리엄 뱅크스 등의 사람들은 당대의 석학 램지 씨를 따르는 젊은이 혹은 친구이거나, 따뜻하고 사려깊은 램지 부인의 초대를 받아 온 사람들이었다.

이 특이한 공동체는 실제 울프네 가족이 이루었던 8남매 가족의 여름 별장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울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버지니아 울프의 4남매가 중심이 되어 만든 ‘블룸즈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을 떠올리게도 한다.

블룸즈버리 그룹은 다양한 영국의 인사들, 철학자와 작가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어울려 지냈던 친인척 단체이다. 여기에는 버지니아 울프(작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경제학자), E.M. 포스터(작가), 버네사 벨(화가), Lytton Strachey(비평가), 비타 색빌웨스트 (작가)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나오는, 수정자본주의를 만든 케인스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참 재밌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의 모델이 된 사람으로 알려진 울프의 친구 색빌웨스트도 여기에 속해있다. 유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도 이 그룹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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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램지 부인의 오지랖 : 커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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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 부인은 자주, 아직 짝이 없는 남녀의 결혼 혹은 사랑을 주선하려 한다. 램지 부인 본인의 결혼생활은 아름다울지언정 완벽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녀는 윌리엄스 뱅크스와 릴리 브리스코를, 폴 레일리와 민타 도일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한다.

[p. 83] 당신도 민타도 모두들 결혼해야 해요. … 이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거든요. 결혼하지 않는 여자는, 독신 여자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을 놓치는 거에요.

[p. 99] 그런데 이제 민타와 폴 레일리의 결혼을 주선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다시 삶을 다소 불행한 것으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협상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든, 그녀 자신은 모두에게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마치 자신에게도 도피처가 되는 양, 그녀는 사람은 결혼해야 한다고, 사람은 자식을 두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빨리,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p. 116] 아, 그런데 저기서 함께 거닐고 있는 사람은 릴리 브리스코와 윌리엄 뱅크스가 아닐까? 그녀는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등에 근시인 두 눈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 분명했다. 그건 그들이 결혼하리라는 뜻이 아닐까? 그래, 그래야 한다. 얼마나 탄복할 만한 생각인가! 그들은 꼭 결혼해야 한다.

[p. 286] 결혼에 대한 그녀의 그 열광적인 집착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릴리는 이젤 앞에서 이리저리 걸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래, 릴리의 말마따나 결혼에 대한 램지 부인의 집착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나도 주변의 어르신들 중 일부가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들이 꼭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하고싶어 안달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고,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램지 부인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릴리와 윌리엄스는 결국 이어지지 않았지만, 건설적이고 건강한 관계로 남았다. 폴 레일리와 민타 도일은, 결혼은 성사되었을지언정 완전한 결합과는 거리가 있었고, 이 광경을 릴리 브리스코가 고소한 듯이 바라보는, 그러니까 결혼의 필요성을 그렇게 강조했던 램지 부인을 다소간 비웃는 모습은 참 재밌다.

4. 램지 씨의 인정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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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가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 작가라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이 소설에서 남자들, 램지 씨와 찰스 탠슬리와 윌리엄스는 인정욕구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무언가 자신의 업적 내지는 견해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성에 차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반면 여자들, 램지 부인과 릴리 브리스코는 남자들의 약동하는 자아를 인정해주고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가진 존재로 서술된다.

특히 램지 씨는 그 경향이 심했다. 당대의 석학일지언정, 그 명성이 다음 세대까지 미치지는 않을 범속한 학자이자 교수로서, 그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어떤 사람이 필요했고 램지 부인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준다.

[p. 55] 그녀가 여자였기에, 하루 종일 사람들은 으레 이러저러한 문제로 그녀를 찾았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원했고, 다른 사람은 저것을 원했다.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고, 그녀는 종종 자신이 사람들의 감정에 흠뻑 젖은 스펀지일 뿐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p. 251] 이젤을 그에게 1~2미터 더 가까운 곳에 세웠더라면, 어떤 남자라도 가까이 있었다면 이런 감정의 토로를 막았을 것이고, 이런 탄식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그녀가 여자이기에 이 끔찍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여자니까 그녀는 이런 상황에 처리하는 법을 알았어야 했다. 그저 멍하니 서 있는 것은 여자에게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뭐라고 했더라?) 오 램지 씨! 친애하는 램지 씨! 스케치를 하던 친절한 노부인, 벡위스 부인이라면 즉시, 그리고 적절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돼. 그들은 나머지 세상과 단절된 채 서 있었다. 그의 무한한 자기 연민, 공감에 대한 요구가 세상에 흘러나와 사방에 퍼지면서 그녀 발치에 웅덩이를 만들었고, 파렴치한 죄인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발이 젖지 않게 치맛자락을 모아 발목 위로 약간 끌어 올리는 것뿐이었다.

울프의 이런 통찰은, 아마도 울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세상에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그걸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 나 또한 인정욕구가 있어서 무엇이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려 하는 편이다. 또 한편으로는, 에고가 강한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기꺼이 숙이고 그들을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램지 씨처럼 혹은 울프의 아버지처럼 지나친 자의식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무자비할 정도의 인정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울프는 이 책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여, 남성에게는 ‘불모성’이 있다고 말한다. (p. 137) 놋쇠부리나 언월도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렇듯 울프는 남자와 여자를 대조하며 설명하고 있지만, 남성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기만의 방」에서도 울프는 남성이 창조해낸 수많은 업적들에 비해 여성은 한 것이 없다고 언급하듯이 「등대로」에서도 울프는 ‘남자의 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p. 20] 이 이야기에 찰스 텐슬리는 우쭐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냉대를 받았지만 램지 부인이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가 마음을 달래 주었다. 그는 기운이 났다. 비록 쇠퇴하고 있더라도 남자의 지성은 위대하다고 은근히 암시하고, 또한 모든 아내가 남편의 노고에 순종해야 한다고 넌지시 암시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전보다 더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5. 램지 부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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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단연 램지 부인의 죽음이다. 마치, 울프의 어머니가 50세 즈음에 돌아가셨듯이, 램지 부인도 비슷한 나이에 운명을 달리하게 되고, 그것은 이 공동체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램지 부인의 사인이 무엇인지는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램지 부인이 죽는다는 사실은 정말 뜬금없이 서술된다. 1부에서 램지 가족의 만찬이 끝난 후 2부 3장의 마지막에 갑자기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오는 것이다.

[p. 208] (램지 씨는 어느 어둑한 날 아침에 비틀거리며 복도를 따라 걷다가 양팔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가 팔을 내민 전날 밤에 램지 부인이 다소 갑작스럽게 죽었기에, 그의 팔은 텅 빈 채로 남고 말았다.)

‘열린책들’의 해설을 보면 울프는 처음에 이 소설을 구상할 때 본인의 아버지의 초상을 그린 소설을 쓰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을 만들어나감에 따라 본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넣어서, 혹은 어머니에 대한 내용을 더 주된 내용으로 소설을 채우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말할 것도 없이 램지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의 어머니 Julia Prinsep Stephen의 현신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소설은 주로 램지 부인에 대한 찬양과 추모가 반복되는 것에 다름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소설의 1부는 램지 가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지만, 그 중심에는 램지 부인의 내적,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서술이 있다. 램지 부인과 앤드루, 프루의 죽음이 2부에 서술된 이후에 나오는 3부는 (다양한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로는) 램지 부인에 대한 릴리 브리스코의 추모가 있다. 왜 램지 부인은 이 모든 것을 놔두고 하늘나라로 갔는지 궁금해하고, 램지 부인이 있었던 시절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릴리 브리스코의 장면들이 소설의 3부의 상당한 양을 차지한다.

릴리 브리스코는 램지 씨의 놋쇠부리와 같은 맹목적인 인정욕구가 결국은 램지 부인을 해쳤다고 분노하고 있다.

[p. 245] 저 남자는 결코 주지 않았어. 마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그녀는 생각했다. 저 남자는 받기만 했어. 반면에 나는 줘야 한다는 강요를 받을 거야. 램지 부인은 주었지. 주고, 주고, 또 주다가 그녀는 죽었고, 이 모든 것을 남겨놓았어. 릴리는 램지 부인에게 정말로 화가 났다.

6. 불가능을 향한 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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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릴리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램지 씨이지만, 그리고 일반적이고 점잖은 행동 양식으로 살아간다기 보다는 괴팍한 모습을 보이는 램지 씨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램지 씨를 미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램지 씨에게 불편을 느끼는 릴리 브리스코 마저도, 램지 씨의 친구 윌리엄 뱅크스가 그를 ‘위선적이다’라고 슬쩍 비난하자 램지 씨에게는 ‘작열하는 탈속성’같은 것이 있다며 램지 씨를 비호하기도 한다.

[p. 43] 당신은 위대해요. 그녀는 속으로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램지 씨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는 마음이 좁고, 이기적이고,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에요. 그는 응석받이고 폭군이에요. 그는 램지 부인을 죽도록 지치게 해요. 하지만 그에게는 당신이 없는 것이 있어요. (그녀는 계속해서 뱅크스 씨에게 말했다.) 작열하는 탈속성이랄까.

램지 씨 혹은 울프의 아버지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혹은 저술가였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성취하지는 못했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때문에 램지 씨는 아직 이뤄내지 못한 그 무언가를, 철학적 사유의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분투한다. A부터 Z까지 다 나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Q에서 그쳤지만 그리고 R에 도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보일지라도, 램지 씨는 최선을 다해 직업적인 소명을 혹은 철학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려 한다.

멍한 표정으로 섬을 왔다갔다 하며 읊어대는 테니슨의 시 「경기병 여단의 돌격」에서의 경기병들처럼, 램지 씨는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목표를 향해 용감하게 돌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절대 도달할 수 없을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모습은 마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생각나게 한다. 그가 자주 읊어대는 비극적인 시의 내용처럼 그는 기약없는 드높은 목표를 향해 돈키호테적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p. 31] 실은 램지 씨가 팔을 흔들면서 “용감하게 우리는 달렸지”라고 소리치며 갑자기 돌진해 오는 바람에 릴리의 이젤이 넘어질 뻔했다.

[p. 52] 그는 몸서리를 쳤다. 그는 부르르 떨었다. 부하들의 선두에 서서 벼락처럼 사납게, 매처럼 맹렬하게 말을 달려 죽음의 계곡을 지나온 자신의 업적에 대한 허영심과 만족감이 부서지고 파괴된 것이다. 빗발치는 탄환과 포탄을 받으며 우리는 용감하게 말을 달렸지. 일제히 쏟아지는 사격으로 천둥처럼 울리는 죽음의 계곡을 스치듯 지나서. 곧바로 릴리 브리스코와 윌리엄 뱅크스에게로 돌진하더니 그는 몸을 떨었다.

대체로 램지 씨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비관적이다. 3부에서 돛배를 타고 등대를 향해 가면서도

우리는 죽어갔지 / 각자 홀로 We perish’d / each alone

와 같은 시구를 외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관점에서는 어리숙하고 이상할 지 몰라도, 그래서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본인은 진지하게 자신에게만 보이는 목표에 집중하여 모든 신경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램지 씨의 모습은 단지 버지니아 울프의 부친만을 표상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단순히 울프의 부모를 추모하는 글에 불과할 테니까. 램지 씨의 모습은 불가능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삶을 닮았다.

나 또한 살면서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수없이 꾸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까뮈가 말하는 시지프적인 부조리와는 다르다. 살면서 계속, 무언가 계속하여 개선을 요구하고 갈망하는 욕심을 내거나 꿈을 좇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게 있어서는 수학에 대한 이해,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 또는 책을 깊고 넓게 읽는 것에 대한 꿈 혹은 목표가 있다. 수학은 워낙 넓고 깊으니, 또 문학도 마찬가지이니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파가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오히려 이 깊고 넓은 공간에 앉아 편안히 즐기는 정도가 내 깜냥이 아닐까. 나는 램지 씨처럼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으니까. 램지 씨가 Q에서 R로 가는 것에 고민한다면, 나는 그저 G에서 H로 가는 정도의 수준에 머무를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하릴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램지 씨의 기약없는 돌진, 보상이 없을 수도 있는 도전을 본문에서는 산정에 오르는 등산가에 비유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문필가 셰익스피어의 명성마저도 한낱 돌보다 더 영속하지 않을 것인데 자신의 성취는 도대체 세상에 얼마나 남아있을 수 있을지 의문한다. 하지만 높은 곳에 다다르고자 하는 그 시도 자체는 고귀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p. 60] 자신의 작은 빛은 그리 환하지 않게 일이 년 정도 빛나다가 그보다 더 큰 빛에 삼켜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세월의 폐허와 별들의 소멸을 볼 수 있을 만큼 높이 올라선, 그 가망 없는 선봉대의 지도자를 누가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죽음이 다가와 그의 수족이 뻣뻣이 굳어 움직일 수 없기 전에 그가 마비된 손가락들을 의식적으로 이마에 올리고 어깨를 똑바로 펴서, 구조대가 왔을 때 자기 초소에서 죽은 군인의 훌륭한 풍채를 발견하게 된다면? 램지 씨는 항아리 옆에서 어깨를 쭉 펴고 꼿꼿한 자세로 섰다.

7. 등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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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초입부터 램지 부인과 제임스는 ‘등대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성」에서 주인공들이 자꾸 성에 들어가고 싶어하는데 그 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사람들이 계속 고도를 기다리지만 고도가 도대체 누군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램지 부인과 제임스는 무작정 등대에 가야 한다고 계속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램지 씨와 찰스 탠슬리는 날씨가 안좋아서 갈 수 없다고 일축하듯 말한다.

아니,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일부 나와있기는 하다.

[p. 249] 그러고 나서 그는 등대에 가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아내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보내 주곤 했소. 거기에는 결핵성 고관절염에 걸린 가엾은 소년, 등대지기의 아들이 있소.

하지만, 소설의 제목이 ‘등대로’인 것을 보면, 그리고 3장에서 그동안 반대하던 램지 씨가 막내들을 데리고 등대를 향해 가는 장면을 보면, 등대로 간다는 것이 특정한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p. 337] “저 꾸러미를 가져오너라.” 그는 등대에 가져가도록 낸시가 마련해 준 것들을 고개로 가리키며 말했다. “등대지기에게 줄 꾸러미를.” 그가 말했다. 그는 일어서서 몸을 꼿꼿이 세우고 뱃머리에 우뚝 섰다. 마치 그가 온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듯하다고 제임스는 생각했고, 캠은 그가 허공으로 뛰어오르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꾸러미를 들고 청년처럼 가볍게 바위에 뛰어 올랐을 때, 그들 둘 다 일어서서 그 뒤를 따랐다.

램지 씨가 철학을 향한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사람이었던 것과도 조금 비슷하게, 램지 부인도 기약 없는 꿈을 좇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겟다. 램지 씨와 램지 부인이 이뤄놓은 이 공동체는 무엇을 지향했던 것일까.

실제로 이 공동체에는 잠재적인 갈등이 존재했다. 똑똑하고 이지적이지만 남성우월적이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다투곤 했던 찰스 탠슬리와 그때문에 피해를 보곤 했던 릴리 브리스코가 있었다. 마지막 만찬에서, 램지 씨는 게걸스럽게 수프를 먹어대는 오거스터스 카마이클을 째려보기도 한다. ‘등대로’ 가고 싶어하는 램지 부인과 제임스 램지의 바람에 램지 씨와 찰스 탠슬리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폴과 민타의 사랑은 램지 부인 생전에는 막 시작되는 단계였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국 파국에 이른다.

램지 부인은 이 모든 것들을 포용하려 한다. 고철을 녹이듯 모든 갈등을 녹여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주조하려 한다. 사이가 좋지 않던 그 릴리 브리스코와 찰스 탠슬리마저도, 해변가에 앉아 편지를 쓰는 램지 부인의 앞에서는 어색하게나마 서로 어울리며 물수제비를 던졌다. 무자비할 만큼의 자의식과 인정욕구를 가진 남편의 내면을 다독여주고, 사회성이 없는 찰스 텐슬리 또한 보듬어준다.

램지 부인의 이타심과 동정심은, 그녀가 스스로 원해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부인은 실질적으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부인의 죽은 후의 그 쓸쓸함과 고적함을 보면 알 수 있다.

개별성과 응집성. 두 가치는 모두 중요할 수 있겠고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펼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알 수 없는 힘으로, 인지하기 힘든 결속력으로 그들을 자연스럽게 묶었던 것은 램지 부인의 역할이었다.

등대로 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이나었을까.

8. 마지막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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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 가족의 만찬 장면을 보며 나는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찬 중에 소개되는 램지 부인의 감정과 음식이 나오기 전에 서술되는 그 장면들이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쩌면 램지 부인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 – 그것은 이 소설의 내용 전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를 명시적으로, 진실되게 표현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다면 해당 부분(제 1부 17장, p. 136-138)을 길게 발췌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만약 이 소설이 걸작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부분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내 삶으로 무엇을 이룬 것일까? 램지 부인은 식당 상석에 자리를 잡고 식탁 위에서 흰 원을 이루는 접시들을 바라보면 생각했다. “윌리엄 내 옆에 앉아요.” 그녀가 말했다. “릴리는 저쪽에.” 그녀는 지친 듯이 말했다. 그들(폴 레일리와 민타 도일)에게는 그것이 있는데, 그녀에게는 오직 이것(무한히 긴 식탁과 접시들과 칼들)밖에 없었다. 저쪽 끝에서 남편이 눈살을 찌푸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왜 그럴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어떻게 그에 대해서 어떤 감정이나 어떤 애정을 느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프를 떠 주면서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을 지나왔고 모든 것을 통과했으며, 모든 것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저기 회오리바람이 일고 있어서 그 안에 휘말릴 수도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도 있는데, 자신은 벗어난 느낌이었다. 찰스 텐슬리(그에게 “저기 앉으세요.”라고 말했다.)와 오거스터스 카마이클이 차례로 들어와서 앉는 동안에 그녀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자기 말에 대답하기를,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이런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수프를 퍼 담았다.

괴리감(저것을 생각하면서 이런 일, 즉 수프를 퍼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에 눈썹을 치키면서 그녀는 자신이 그 회오리에서 벗어났음을 더욱 강렬하게 느꼈다. 혹은 어둠이 내려앉아 빛이 바래자 사물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게 된 듯이. 그 방은(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척 초라했다. 아름다운 구석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녀는 텐슬리 씨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느 것도 융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 각자 외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러므로 화합을 이루게 하고, 흐르게 하고, 창조하려는 노력은 모두 그녀에게 달려 있었다. 또다시 그녀는 남자들의 불모성을 별 적대감 없이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멈춰 버린 시계를 흔들듯이 자신을 약간 흔들어 일깨웠을 때, 시계가 다시 째깍거리기 시작하듯이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그 익숙한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꺼져 가는 불꽃을 신문지로 둘러싸서 보호하듯 아직도 약하게 뛰는 맥박에 귀를 기울이고, 지키고, 일으키려는 노력을 되풀이했다. 그런 다음에 윌리엄 뱅크스 쪽으로 (가엾은 사람! 아내도 자식도 없이 오늘 밤을 제외하면 매일 혼자 하숙집에서 식사하다니!) 그런 노력을 끝냈다. 이제 다시 스스로를 떠받칠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해졌으므로, 그녀는 그에 대한 동정심에서 이 모든 일을 시작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돛을 보면서도 다시 항해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배가 침몰한다면 자기 몸이 바닷속에서 빙빙 돌다가 그 밑바닥에서 휴식을 얻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지친 선원처럼.

“당신에게 온 편지를 보셨어요? 홀에 두라고 했어요.” 그녀는 윌리엄 뱅크스에게 말했다.

릴리 브리스코는 부인이 아무도 살지 않는 낯선 곳으로 표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곳으로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너무나 오싹해져서, 아련히 멀어지는 배의 돛이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지켜보듯이 적어도 두 눈으로 그 표류를 따라가려고 늘 애쓰게 되었다.

그녀가 무척 늙어 보인다고, 무척이나 초췌하게 보인다고 릴리는 생각했다.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윌리엄 뱅크스에게 몸을 돌리자 마치 배가 방향을 돌리고 햇빛이 다시 그 돛을 비춘 것 같았다. 릴리는 마음이 놓여서 약간 즐거운 기분으로 생각했다. 왜 부인은 뱅크스 씨를 동정할까? 그의 편지가 홀에 있다고 그가 말했을 때 그런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가엾은 윌리엄 뱅크스라고 말한 것 같았다. 마치 그녀가 한편 사람들을 동정하느라 지친듯이, 그리고 그녀 내면의 활력, 다시 삶을 이끌어 가려는 결심이 동정심으로 일깨워진 듯이. 그것은 옳지 않다고 릴리는 생각했다. 그것은 부인의 잘못된 판단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녀 자신의 욕구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것으로 보였다. 뱅크스 씨에게도 자기 나름의 일이 있다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자기에게도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 즉시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떠올렸다. 그래, 그 나무를 더 중앙으로 옮겨야겠어. 그러면 어색한 공간을 없앨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해야겠어. 곤혹스러웠던 문제가 그거였어. 그녀는 그 나무를 옮길 것을 기억하도록, 소금 통을 집어서 식탁보의 꽃무늬 부분에 내려놓았다.

열린책들의 해설에서는 이 만찬 장면이 1부의 1/4이나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며 성경의 ‘최후의 만찬’과 연관시키기까지 한다. 실제로 이 만찬 이후에 (직후인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이후에) 램지 부인이 사망하게 되니 이 만찬은 구성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9.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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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에서는 사는 것의 의미에 대해 궁금해하고, 왜 사는지에 대해 자문하는 경우가 많이 등장한다. 램지 부인은 만찬이 시작하기 전

하지만 나는 내 삶으로 무엇을 이룬 것일까?

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이제는 어떤 회오리 바람에서 벗어났다고 느낀다. (p. 136)

윌리엄 뱅크스는 식사 시작을 기다리는 데에 지루함을 느끼다가 문득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고 자문한다 (p. 145) 심지어 인간이 매력적인 종인지 궁금해하며 ‘인간의 삶은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도 질문한다.

릴리 브리스코도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이 모두가 무엇을 뜻할 수 있을까? 릴리 브리스코는 혼자 남겨진 후 커피 한 잔을 더 가지러 부엌에 가야 할지 아니면 그곳에 그곳에서 기다려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하고 자문하고 (p. 239) 램지 부인에 대해 회상하다가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물음이 전부였다. 이 단순한 물음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밀려들곤 했었다. 위대한 계시가 밝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p. 263) 또한, 카마이클씨를 바라보며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이 모두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라고 속으로 의문하기도 한다.

소설 속의 다른 인물들도 대체로 삶의 의미에 대하여 어떤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램지 씨, 릴리 브리스코 이들은 각자 살아가는 원동력을 어떻게든 간신히 만들어 내어 살아가고 있다. 한편 오거스터스 카마이클처럼 별 생각 없이 사는 것 처럼 보이다가 문득 시를 써내는 사람도 있고 찰스 탠슬리처럼 본인의 지성과 노력만을 철썩같이 믿고 앞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려는 사람도 있다.

10. 낙관 vs 비관

10_pesimism_with_hope

램지 부인은 가난한 이들의 자선사업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다리에 올라가 벽보를 붙이는 외팔 남자에 대해서도, 이웃집에 대해서도, 또 저 멀리 등대에 사는 등대지기에 대해서도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램지 부인은 주변 이웃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천사같은 사람이자,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램지 부인의 마음 속은 온갖 고민으로 가득 차있다. 램지 씨가 램지 부인의 ‘비관주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도 묘사된다. (p. 195)

만찬의 마지막, 램지 씨는 엘튼의 ‘루리아나 루릴리’라는 시를 읊조린다. (p. 176-177) 이 시의 내용은 굉장히 희망적이지만 정작 램지 씨의 마음은, 자신의 저서나 업적이 초라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차 있다. 또한 램지 부부는 현실적인(경제적인) 문제때문에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속내도 가지고 있다. 특히 램지 씨는 만찬이 끝난 후 서재로 들어가 월터 스콧의 소설 「골동품상」을 읽어가며, 요즘 젊은이들이 월터 스콧을 읽지 않는 것을 부정하려 한다. 다만, 그 읽는 내용은 주인공의 죽음을 다루고 있어 비관적이다. (p. 187-192)

결국, 램지 부인이 죽기 직전의 장면에서 램지 부부의 기분은 절망과 희망을 왔다갔다 한다.

[p. 105] 그녀는 물었다. 이성이나 질서, 정의라고는 전혀 없고, 오직 고통과 죽음, 빈곤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마음 속으로 늘 알고 있었다. 세상은 아무리 비열한 배반도 능히 저지를 수 있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았다. 어떤 행복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다.

11. 마치며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발제문에 기반한 글이다보니 구성이 정신없기는 하다.

여하튼 나에게는 9년이 걸려 읽은 책이라 참 각별한 책이다. 처음에는 진도가 그렇게 안나가던 책이, 민음사 버전으로 한 번 읽고, 다시 열린책들 버전으로 읽은 뒤에 또다시 민음사로 읽으려고 보니 술술 잘 읽혔다. 그만큼 한문장 한문장 잘 새겨가며 읽었던 책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더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3기니」는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읽지 않을 것 같고 「파도」나 「세월」같은 소설은 언젠가 읽지 않을까. 하지만 그보다는 에드워드 올비가 썼다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는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아 글을 끝내기 전에, 이 책과 어울릴만한 노래를 넣어야지. 얼마 전(11/7) 발매된 루시드폴 11집의 두번째 트랙 ‘등대지기’이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발매 기념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이 곡의 가사는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2절이 마음에 드니 여기 첨부해놓자.

살아있음에 지쳐버린 내 친구여

눈을 뜨고 내 곁에 오기를

낡고 녹슨 내 작은 어깨라도 딛고

다시는 슬프지 않은

누구도 아프지 않는

아무도 이별하지 않는

세상으로 가자

참고 자료들

읽은 책의 판본들

  •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민음사, 1927(2014)
  •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열린책들, 1927(2013)

소설 원문

https://gutenberg.net.au/ebooks01/0100101.txt

시 「경기병여단의 돌격」

시 「루리아나 루릴리」

  • 찰스 엘튼의 시 (1899)
  • 원문
  • 본문에 나온 부분

    I wonder if it seems to you 당신도 그렇게 여길지 궁금해요

    Luriana Lurilee 루리아나 루릴리

    That all the lives we ever lived 우리가 지금껏 지나온 모든 삶과

    And all the lives to be, 앞으로의 모든 삶은

    Are full of trees and waving leaves, 나무들과 물들어 가는 이파리들로 가득할 거에요

    Luriana Lurilee. 루리아나 루릴리

시 「익사자」

  • 윌리엄 쿠퍼의 시
  • 원문
  • 본문에 나온 부분

    But I beneath a rougher sea 그러나 나는 더 거친 바다 밑에서

    And whelm’d in deeper gulfs than he. 그보다 더 깊은 심연에 잠겼지

    우리는 죽어갔지 We perish’d

    각자 홀로 each alone

동화 「어부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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