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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기 어려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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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다양한 “읽기 어려운 소설”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비유와 상징을 사용해서 이해하기 힘든 밀란 쿤데라가 있고, 심리묘사를 상세하게 하느라 난해한 버지니아 울프나 프루스트가 있고, 병적인 인물들의 내면을 철저히 따라가야 해서 어려운 도스토옙스키가 있습니다. 그런데 「벌집」은 이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읽기 어려운 소설이었습니다. 「벌집」이 어려운 이유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려운 소설을 읽을 때, 등장 인물들이 나온 페이지 수를 적는 습관이 있습니다. 일종의 색인을 만드는 건데요. 아무리 어려운 소설이라도 이 방법을 쓰면 등장인물을 다 파악할 수 있게 되어서 애용합니다.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해서 색인을 열심히 만들어봤는데, 제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300명이 넘습니다. (계산 코드)

조금 더 정확하게는 전체 등장인물은 309명이고, 그 중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은 199명이며, 이름이 언급되면서 소설의 서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116명입니다. 예를 들어 마르틴 마르코나 엘비라는 이름도 언급되고 서사에도 등장합니다. 한편, 엘비라의 아버지인 피델 에르난데스 같은 인물은 이름만 언급될 뿐 서사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플라멩고를 부르는 아이’는 여러번 등장하긴 하지만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여하튼, 378페이지짜리 책에 309명의 인물이 나타나는 것이라면 한 페이지에 거의 한 명 꼴로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셈입니다. 주요등장인물 116명으로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세 페이지에 한 명 꼴로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셈입니다.

이 소설은 구성 면에서도 특이합니다. 「벌집」은 총 여섯 장(章, chapter)과 에필로그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장들은 여러 편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령 첫번째 장의 첫번째 글에서는 ‘도냐 로사’라는 인물이 나오고, 두번째 글에서는 ‘돈 레오나르도 멜렌데스’와 ‘세군도 세구라’가 등장합니다. 세번째 글에서는 다시 ‘도냐 로사’가 등장하고 ‘돈 하이메 아르세’도 나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네번째 글에서는 멜렌데스와 세구라가 다시 나오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네번째 글에서는 새로운 인물인 ‘도냐 이사벨 몬테스’가 ‘도냐 로사’와 함께 등장합니다. 이렇듯 일정한 규칙없이 산발적으로 이야기들이 나열되는 소설입니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 이야기들이 모두 독립적이라면, 그러니까 옴니버스식 소설이라면, 이전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고 읽어도 되니 읽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조금씩은 얽혀있어서 어느 정도는 이전 이야기를 기억해야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 등장인물들도, 조금씩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가령 마르틴 마르코는 훌리타 모이세스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마르틴은 벤투로와 친구이고, 벤투로의 여자친구가 훌리타라는 점에서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마르틴은 커피값을 치르지 못해 카페에서 쫒겨나게 되는데 카페의 주인인 도냐 로사의 동생이 도냐 비시타시온이고, 도냐 비시타시온의 첫째딸이 훌리타라는 점에서도 연관이 있습니다.

미묘하게 얽혀있는 수많은 인물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은 마치 벌집과도 같은 큰 덩어리, 스페인 내전 직후의 마드리드 시내의 모습을 형성합니다.

2. 도냐 로사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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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등장인물들이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무질서하게 뻗어가는 듯한 소설이지만, 다행히도 소설의 공간적인 배경은 꽤 한정적입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입니다. 특히 소설의 첫 장은 도냐 로사의 카페에 한정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어떻게 보면 도냐 로사의 카페와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설은 도냐 로사가 운영하는 카페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도냐’는 영어에서의 Mrs에 해당하는 말이니, ‘도냐 부인’ 혹은 ‘도냐 아주머니’ 정도로 생각하면 될텐데요. 스페인 내전 직후 혹은 세계 2차대전 중의 혼란하고 빈곤한 시대에, 도냐 로사의 카페는 꽤 호황입니다.

카페를 출입하는 손님들 중 몇몇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입니다. 고리대금업으로 상당한 돈을 번 돈 트리니다드가 있고 인쇄소를 운영하는 부자 돈 마리오가 있습니다. 돈 트리니다드는 손자를 데려와 함께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돈 마리오는 한가롭게 담배를 핍니다

중년의 남자들 중에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한량들도 있습니다. 늘 카페에서 한자리를 차지하여 큰소리로 떠들어대곤하는 돈 파블로와 도냐 로사의 동생 도냐 비시의 남편 돈 로케가 그들입니다. 시간이 많은 그들은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바람을 피기도 합니다.

몇명의 아주머니들도 있습니다. 도냐 마틸데와 도냐 아순시온은 매일마다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떱니다. 미망인인 그들은, 자식들의 결혼 문제에 대하여 늘 심각하게 토론합니다. 도냐 야순시온의 딸 파키타는 유부남인 대학교수 돈 호세와 동거중입니다. 돈 호세의 아내가 병에 걸리자, 그 여자가 죽고 대신 파키타가 돈 호세와 결혼을 할 수 있을거라고, 도냐 마틸데가 도냐 야순시온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당연하지만, 남의 불행을 바라면서까지 자식을 행복을 바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해보입니다.

엘비라는 카페의 단골이자, 유일한 젊은 여자 손님입니다. ‘늙은 처녀’라고 묘사되는 엘비라는 주로 담배팔이소년 파디야와 함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끔 남자들의 대쉬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남자는 남몰래 엘비라에 대해 연정을 품으며, 엘비라가 엄격한 부잣집의 귀한 딸일 것이라는 환상을 품지만, 사실 엘비라는 끼니도 제때 챙길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돈 파블로의 내연녀이며,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불행한 과거를 지닌 여자입니다.

손님들 외에 카페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근로자들입니다. 도냐 로사는, 카페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능한 사장이지만, 종업원들에게 가혹하게 대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종업원으로 일하는 페페나, 지배인으로 일하는 로페즈는 도냐 로사의 거친 욕설을 들으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로페즈의 상황은 소설을 지나며 급변합니다. 로페즈는 10년 전, 고향에서 애인 마루히타를 임신시키고 도망치듯 마드리드로 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도냐 로사의 카페에 마루히타가 나타납니다. 마루히타는 그 사이에, 로페즈와의 쌍둥이 아들들을 데리고 돈많고 나이많은 남자 구티에레스와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구티에레스는 중병에 걸려 죽기 직전입니다. 마루히타는 남편이 죽고나서 수령할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로페즈와 재결합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도냐 로사도 마루히타가 “카페를 인수하고 싶다”는 마루히타의 제안에 움찔합니다.

종업원들 외에는 악사들이 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마카리오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세오아네는 카페 안의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만들어주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힘겹습니다. 마카리오와 그의 애인 마틸데, 세오아네와 그의 부인 손솔레스는 늘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3. 마르틴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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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냐 로사의 카페 다음으로 이 소설을 묶는 요소는 마르틴 마르코의 존재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꽤 많은 인물들은 불행하고 매력적인 젊은이 마르틴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르틴은 카페에서 돈을 내지 못해 쫒겨나고, 추운 밤의 배고픔을 수돗물로 채울만큼 가난하지만,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갑니다.

사는 곳은 부자인 친구 파블로가 얻어주었습니다. 파블로는 마르코를 일컬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놈은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더이상 대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가 좀 더 가난하고 초라해보인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마르틴은 대학도 졸업한 사람이고, 심지어는 잡지와 신문에 글도 기고할만큼 똑똑한 지식인입니다. 마르틴은, 마찬가지로 지식인인 파코와 자주 어울리며 파코에게서 읽을 책과 글을 쓸 종이를 전달받곤 합니다. 그런데 파코는 마르틴보다 상황이 더 나쁘면 나빴지 더 좋지 않습니다. 결핵에 걸려 매일 기침을 하는 파코는, 지독한 가난에 잘 먹지 못하고 약도 복용하지 못해 건강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늘 배고픈 마르틴은 유일한 혈육인 누나 필로의 집에 가곤 합니다. 매형 로베르토와 마르틴은 사이가 좋지 않지만, 로베르토가 열심히 버는 덕에 필로를 보러 가면 저녁 정도는 먹을 수 있습니다.

마르틴과 파코는 셀레스티노가 운영하는 조그만 술집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셀레스티노는 니체의 「아침 놀」에 나오는 ‘동정심은 지살의 해독제이다. 동정심은 우리에게 쾌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약간만 느껴도 우리는 우월감에서 오는 만족을 가득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와 같은 구절을 좋아하는 니체 신봉자입니다. 마르틴은 술값을 치르지 못하고 외상으로 달아놓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어느 날, 셀레스티느논 마르틴에게 외상 문제를 언급하는데 마르틴은 되려 셀레스티노에게 “당신이 니체를 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냐”며 언쟁을 벌입니다. 셀레스티노는 마르틴의 말도 안되는 비난에 화가 났지만,”맹목적인 분노에 몸을 맡기는 것은 짐승의 성질에 다가가는 일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며 마르틴에게 대응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마르코가 위험에 처하자 셀레스티노는 마르코를 구하려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어쩌면 니체가 말한 ‘동정심’이 여기에서 발동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셀레스티노의 술집의 또 한명의 단골손님은 경찰 가르시아입니다. 둘은 갈라시아 지방 출신이라는 데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르시아는 아파트 경비원이자 동향 사람인 구베르신도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입니다.

파블로와 파코 외에도 마르틴에게는 친구들이 더 있습니다. 마르틴은 참 인기가 많은 사람입니다. 벤투라는 7년째 공증인 시험을 낙방한 “장수생”입니다. 수험생인 그는 공부에 매진하기보다는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타다가 여자친구 훌리타와 놀러다니기를 좋아합니다. 그래도 벤투라의 주머니 사정은 마르틴보다 훨씬 나았기에 벤투라는 마르틴에게 돈을 빌려주곤 합니다.

마르틴은 길가를 걷다가 대학 동창 나티를 만나기도 합니다. 나티는 대학시절에 화장도 전혀 하지 않고, 여성참정권을 외치고 다녔던 털털한 여대생이었지만, 지금은 맵시있는 옷에 구두를 신고 여성스럽게 하고 다니는 여자로 변했습니다. 나티가 그렇게 변하게 된 데에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마르틴의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마르틴은 나티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티에게도 돈을 조금 빌린 뒤 헤어집니다.

마르틴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친구 로물로를 만나기도 합니다. 로물로는 책 외에도 판화 작품을 팔기도 했는데, 마르틴은 누나 필로의 생일을 맞아 판화를 사다 선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티에게서 빌렸던 돈을 도냐 로사의 카페에 흘리고 왔으므로 선물을 사지 못합니다.

친구들과 만난 뒤 마르틴은 정처없이 걷습니다. 어디가 목적지인지도 모른 채,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른채 계속 걷습니다. 군밤을 사먹기도 하고, 꽁꽁 언 수도를 틀어 물을 들이켜 배고픔을 달래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기도 하면서 밤거리를 계속 걷습니다. 경찰은 수상한 그의 모습에 신분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벌써 오래전 신분증을 분실한 그는 경찰에게 오랫동안 변명을 해야 했습니다.

춥고 시린 밤, 마르틴이 향한 곳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 도냐 헤수사네 여관이었습니다. 도냐 헤수사는 ‘필로 여관’이라는 이름의, 유곽 비슷한 것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르틴은 여자를 안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인간적인 포근함을 느끼기 위한 마음에서 필로여관에서의 하루를 보냅니다.

원기를 회복한 마르틴은 길을 나섭니다. 마침 그날이 어머니의 기일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묻혀있는 묘지로 향합니다. 묘지로 향하는 발걸음은 왠지 가볍습니다. 마르틴은, ‘이제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지,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돈을 벌면 누나에게 선물도 사줘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날 신문에는 마르틴을 수배하는 기사가 실립니다. 무슨 혐의로 수배당하는지는 소설 상에 언급되지 않지만, 아마도 죄없는 사람들을 수시로 잡아가곤 했던 프랑코의 독재정치 시기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마르틴의 주변사람들, 파코, 벤투라, 로물로, 필로, 셀레스티노 등은 일제히 마르틴을 걱정합니다. 어떤 불행한 일이 기다리고 있는 지 모르는 채로, 미래에 대한 희망찬 계획을 세우는 마르틴이 묘사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4.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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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는 이렇듯 1943년 마드리드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냈습니다. 셀라가 그려낸 일상은 때로 소탈하고 때로 적나라합니다. 도냐 로사의 카페의 사람들과 마르틴 마르코의 주변인물들은 참 인간적이고 평범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그들을 한꺼풀 벗겨보면 지독하고 끔찍한 마드리드의 실상이 드러납니다.

청년 마르틴과 파코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세계가 펼쳐집니다. 필로의 가정부이자, 마르틴의 애인인 페트리타는 마르틴의 가난한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페트리타는 마르틴의 외상값을 갚기 위해 셀레스티노에게 몸을 던집니다. 인쇄소에서 일하는 파코의 애인 빅토리타도 비슷한 운명에 처하기 직전입니다. 빅토리타는, 결핵에 걸린 남자친구 파코가,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빠집니다. 단지 잘 먹지 못하고 약을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파코가 죽어야 한다는 애달픈 상황에, 빅토리타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파코에게 “젊은 여자라면 아무리 못생겼어도 돈을 벌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빅토리타가 돈을 벌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습니다. 이미 주변에는 빅토리타의 상황을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냐 라모나는 우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뚜쟁이짓을 하고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어린 여자아이들을 돈많은 남자들에게 연결시켜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일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도냐 라모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까 언급한, 도냐 로사의 카페에서 매일 수다를 떠는 평범한 도냐 마틸데와 도냐 아순시온과 친근한 사이인 것입니다. 도냐 라모나가 빅토리타와 연결시켜준 남자는, 역시 도냐 로사의 카페에 앉아있던, ‘평범해보이던’ 돈 마리오입니다. 한편, 돈 마리오는 인쇄소에 가난한 청년 엘로이 루비오를 고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엘로이 루비오는, 학사학위가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 배운 청년이지만, 담배를 필 돈조차 없을 정도로 궁핍합니다. 돈 마리오가 그런 엘로이를 고용하려 하는 것은, 헐값에 능력있는 청년을 부려먹으려는 속셈입니다. 기가막힌 것은, 엘로이 루비오가 다름아닌 파코의 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재능있는 청년 파코와 엘로이, 그리고 빅토리타는 너무나도 쉽게 늙은 사람들의 손에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정상적인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마르틴의 친구 나티가 마르틴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은 참 애틋해보입니다. 그런데 나티가 깔끔한 옷차림으로 다니고 마르틴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것은 나티가 유복한 집 출신이라는, 그러니까 나티의 아버지 돈 프란시스코가 돈을 잘 버는 의사라는 점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을 운영하는 돈 프란시스코는, 말을 잘 해서, 그러니까,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병원에 오도록 잘 유도하는 능력이 있어서, 상당한 수입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돈을 가진 이 남자는, 돈 마리오와 비슷한 짓을 저지르곤 합니다. 그러니까, 돈없는 여자들을 건드리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하녀 호세파 로페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수녀원으로 보내졌습니다. 이 아이들은 아마도 커서 또 불행한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돈 프란시스코는, 소설의 말미에 가서는 전쟁고아가 된 열 세살짜리 소녀 마르체를, 그 소녀의 할머니의 시누이에게서 돈을 주고 취합니다.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당시의 마드리드였던 것 같습니다. 보통의 사람들 바로 뒤에서, 거짓말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마르틴의 친구이자, 공부 안하는 장수생 벤투라도 참 평범한 사람입니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에게 허황된 말로 둘러대는 모습이나, 애인 훌리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현대의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만큼 평범해보입니다. 벤투라와 훌리타가 만나는 장소는 도냐 셀리아가 세를 놓는 방입니다. 몰래 사랑을 나누는 남녀가 숙박하는 이곳은, 마치 모파상의 「벨아미」에서 뒤루아가 드 마렐 부인과 몰래 만나던 장소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동시에, 훌리타의 아버지이자 도냐 로사의 처형인 돈 로케가, 도냐 마틸데의 가정부 롤라와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롤라는 아까 언급한 호세파 로페즈의 동생이며, 돈 로케도 돈 프란시스코와 마찬가지로 호세파 로페즈를 건드려 몇 명의 아이를 낳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정도로 난봉을 부리고 다니는 돈 로케의 모습을 보면, 돈 로케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매번 욕을 늘어놓는 도냐 로사의 마음이 차라리 이해되기까지 합니다. 벤투라의 서사는, 훌리타와 돈 로케가 층계에서 서로 만나는 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돈 로케는 딸이 이런 곳에 출입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훌리타 또한 아버지를 이런 장소에서 만났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합니다. ‘이런 곳’을 운영하는 도냐 셀리아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적어도 도냐 라모나처럼 적극적으로 부정한 짓을 저지르려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냐 셀리아는 죽은 조카의 자식을 거둬서 키울만큼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고도 묘사됩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바로 뒷편에는 말도 안되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5. 젊은 사람들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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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건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항상 있어왔던 일입니다. 빈부의 차이가 꼭 평등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는 현대에 와서 실현이 힘든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빈부는 세습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청년들이 때로 큰 불행에 빠져드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르틴과 파코, 페트리타와 빅토리타, 엘비라, 마카리오와 세오아네, 호세파와 룰라 등의 불행과 가난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해보입니다. 물론 이 청년들의 상황을 보편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원래 세상은 그렇게 잔혹한거야’ 라고 말하기에는, 스페인 내전 직후와 세계 2차대전 중의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마드리드의 배경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나타난 청년들의 고난이 눈에 자꾸 밟히는 것은 이들의 모습이 현재의 한국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요새 굶어죽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요즘의 20-30대가 힘들지라도 그 힘듦은 「벌집」에 나타난 역경과는 그 형태가 많이 다를 것입니다. 그래도, 돈 마리오가 엘로이 루비오를 꼬시는 장면은, 중소기업 사장이 어떻게든 사회경험이 없는, 그러나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살살 달래서 부려먹으려는 모습과 유사해보입니다. 소위 지식인으로 분류될만한 마르틴과 파코가 직업을 갖지 못한채로 방황하는 모습은 인문학 전공자들이 취업시장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로베르토와 돈 마리오는 본인들의 성공에 기대어 ‘요즘 애들은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노력하지 않는 자들을 경멸하는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과 비슷해보입니다. 마리 테레와 알폰소, 벤투라와 훌리타, 파블로와 라우리타, 하비에르와 피룰라는, 그 엄격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의 상황 속에서도 청춘들 간에는 순수한 사랑이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돈 로케와 돈 프란시스코, 돈 파블로는 위선적이고 비도덕하여 젊은 세대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일부 기성세대의 아저씨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저는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잘 알지 못해서 이 불행한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스페인의 사회를 형성해나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땐 모두가 가난했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의 50~70년대가 스페인의 전쟁 이후 사회와 유사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쨌든 어린이들이 거리로 나앉고, 어린 학생들이 일하고, 젊은 청년들이 고통받는 시대는 참 암울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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