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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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지정도서모임 주관

평소에 책읽는 걸 좋아하고 또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직접 모임을 열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2020년쯤에 모임을 한 번 주최해봤던 경험이 유일했다. 작년 말, 어느 모임에서 모임을 주관해볼 생각이 있는지 제안받았고 며칠 전 「케이크와 맥주」를 주제로 모임을 열게 되었다.

작년 말,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서머싯 몸이 쓴 다른 책이 무엇이 있을지 살폈다. 「인간의 굴레에서」, 「면도날」 등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케이크와 맥주」는 처음 들어보는 책이었다. 제목이 귀여운데다 표지가 예뻐서 눈이 가기도 했다. 이후 구글에 간단히 검색해봤는데, ‘토머스 하디를 비판한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눈에 띄었다.

토머스 하디라면 재작년(2023)에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테스」는 어릴 때 참 재밌게 읽었었지만 그 해에 다시 읽었었고, 하디가 소설가로 성공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출세작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도 재미있게 봤고,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을 읽으면서는 파토스 같은 것을 느낀 계기가 되었다. 「이름없는 주드」를 보면서는 공부와 학문이 좌절된 인간이 남일같지 않게 여겨졌고, 피천득씨의 글과의 연관성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읽었던 네 권의 책은, 아마도 한국어로 번역된 거의 모든 하디의 소설이었다. 네 권 외에 「귀향」도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듯하지만, 조금 옛날에 번역된 책이었고 읽지 않았다.

한 작가의 책을 열심히 읽다보면, 게다가 하디처럼 두꺼운 책을 써내는 작가의 책을 오랫동안 읽다보면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되거나, 좋아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내적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하디는 「테스」때문에 첫인상이 좋았었고, 나머지 소설들이 「테스」만큼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느낄만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건축 일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소설로 성공하기 시작했고, 말년에는 부당한 비판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던 개인사도 하디를 흥미롭게 여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하디를 비판한 소설이 「케이크와 맥주」라고 하니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1월 초까지 책을 스르륵 읽으며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주최하겠다는 의견을 해당 모임의 모임장님께 전했고, 1월 말에 실제 모임이 있기 전까지 서머싯 몸의 다른 소설들 「인간의 굴레에서」, 「인생의 베일」을 읽었다. 「면도날」까지 읽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모두 민음사의 책으로 읽었는데, 민음사는 참 도서 선정을 잘하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책에 대해 혹은 작가에 대해 알아볼 때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는 편인데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서머싯 몸의 대표작으로 칭해지는 장편소설은 여섯 권 정도로, 각각 「램버스의 라이자」(1897), 「인간의 굴레에서」(1915), 「달과 6펜스」(1919), 「인생의 베일」(1925), 「케이크와 맥주」(1930), 「면도날」(1944)이다.

Maugham published novels in every decade from the 1890s to the 1940s. There are nineteen in all, of which those most often mentioned by critics are Liza of Lambeth, Of Human Bondage, The Painted Veil, Cakes and Ale, The Moon and Sixpence and The Razor’s Edge.

하지만, 「램버스의 라이자」는 단지 서머싯 몸의 데뷔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는 없다고 보여진다. 「램버스의 라이자」 이후에 몸은 소설에서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희곡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금전상의 충분한 만족을 얻은 후에 몸은 소설로 몸을 돌려 「인간의 굴레에서」를 썼던 것이고, 그때부터 몸의 주요 소설들이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민음사에서는 서머싯 몸의 실질적인 대표작 다섯 편을 모두 번역해서 출판한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작가들 중에서 이렇게 다섯 권이나 선정된 작가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두 권의 서머싯 몸 전집까지 합치면 일곱 권이나 된다.

이번에 읽은 네 권의 소설들 중에서는 「케이크와 맥주」가 가장 좋았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소설 그 자체에 대해 다룬 소설이고, 다른 소설을 평가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생각할 만한 거리가 많았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어떤 작가가 좋은 작가인가, 어떤 성공이 괜찮은 성공인가, 건전한 정신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지정도서 모임을 열기 전, 평소 다니던 세 군데의 자유도서모임에 가서 「케이크와 맥주」를 소개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꽤 좋았고, 나 또한 설명을 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지정도서 모임도 잘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막상 모임을 진행해보니 쉽지는 않았다.

이 글은 해당 지정도서 모임의 후기 글로도 활용될 예정이라, 아래 장 부터는 존댓말 형식으로 써질 예정이다.

1. 소설의 첫 문장

첫 문장이 유명한 소설들이 있습니다. 까뮈의 「이방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 소설 전체의 주제나 소재를 관통하는 문장이 맨 앞에 위치하는 경우들이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도 첫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걸어 찾는 사람이 출타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중요한 용무인 양 들어오는 대로 전화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면 그 용무란 것은 전화를 받은 사람보다 전화한 사람에게 더 중요한 일이기 마련이다.

I have noticed that when someone asks for you on the telephone and, finding you out, leaves a message begging you to call him up the moment you come in, and it’s important, the matter is more often important to him than to you.

소설의 첫 부분. 어셴든은 동료 작가 엘로이 키어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소식을 전해듣습니다. 자기보다 급이 낮은 작가를 하대하는, 이해타산적인 엘로이 키어가 어셴든에게 먼저 연락을 할 리는 없었으므로 엘로이 키어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주목할만하다고 어셴든은 생각합니다. 정말로, 엘로이 키어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 문단의 거장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회고록을 멋들어지게 써서 출판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가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실에 충실한 책보다는 대가를 칭송하기 위한 목적에 충실한 책을 적어내려 합니다. 그러니까, 엘로이 키어는 ‘성공을 위한 성공’을 하려는 사람이고,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만들어진 위인’이 됩니다.

2. 줄거리 : 어셴든의 회상

유명한 작가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후기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만 그의 초기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엘로이 키어가 굳이 어셴든에게 부탁했던 건, 어셴든이 드리필드가 무명이었던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둘은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같은 고향 출신이고 어셴든은 드리필드가 소설가로서 막 성공하던 시점까지도 잘 알고지냈었기 때문에, 엘로이 키어는 어셴든이 드리필드의 성공의 비밀 내지는 위대한 정신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셴든은 엘로이 키어에게 자신은 드리필드에 대해 잘 모르며 그가 대단한 작가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회고록 집필 제의를 거절합니다. 다만 거절하면서 드리필드와 그의 첫 부인인 로지에 대해 회상합니다. 무명 시절의 드리필드는 신사 계급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을 받게 되지만 이내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고향인 블랙스터블에 와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신사가 아닌 그가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반향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드리필드를 무시했고, 드리필드는 평범하고 저속한 사람들, 조지 켐프나 갤러웨이와 어울립니다. 드리필드의 부인 로지에 대한 안좋은 소문도 무성했습니다. 실제로 로지는 술집 여급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며, 과거에는 조지 켐프와도 애정관계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시절의 회상, 즉 첫번째 회상은 드리필드 부부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게 되면서 끝나며 소설의 절반을 채우게 됩니다.

결국 드리필드의 회고록은 엘로이 키어가 직접 쓰기로 합니다. 다만 엘로이 키어는 드리필드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간단하게 글로 써주기를 부탁하며, 또한 드리필드의 미망인이자 두번째 부인인 에이미를 만나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어셴든은 이 제안에 따르면서 다시 드리필드에 대해 회상합니다. 드리필드 부부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건 어셴든이 런던의 한 거리를 걸으면서였습니다. 드리필드가 몇몇 소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것처럼 영문학의 대부로 추앙받을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문단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성공 청부사’ 트래퍼드 부인 덕분이었습니다. 트래퍼드 부인은 신진 작가를 발굴해 키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이번엔 반드시 우승마에 걸겠다는’ 생각으로 드리필드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합니다. 유명인들에게 드리필드를 소개하고, 드리필드를 호평하는 기사를 쓰게 하고, 무엇보다도 예술가들의 모임을 열어 그 모임이 드리필드를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이후 드리필드의 첫번째 부인 로지가 그녀의 옛 애인 조지 켐프와 달아나고, 요양차 시골에 내려갔다가 같이 동행한 에이미와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에이미는 작가의 부인에 걸맞게 품격있는 행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드리필드는 트래퍼드 부인과 에이미의 포장에 힘입어 지속적인 성공을 구가하며 현재에 이릅니다.

어셴든의 이러한 회상은 (그리고 로지와의 일화들은) 소설의 나머지 절반을 채우지만, 엘로이와 에이미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드리필드를 거장으로 떠받드는 것이 중요한 그들에게 있어서 드리필드가 유행가를 즐겨부르던 모습과 격의없는 태도, 로지의 행방 등 이른바 진실이라고 할만한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셴든은 마지막으로 드리필드를 생각하며, 그가 대단한 문학적 성취를 거둔 작가와 신분상승과 함께 아내와 자식을 잃은 인간적인 모습 사이를 배회하는 유령 같은 존재라고 결론내립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얼굴은 가면이었고 그의 행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실체는 죽을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존재였고, 그의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 사이를 조용히 오가는 유령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에드워드 드리필드라 여기는 두 꼭두각시에게 냉소적이고 초연하게 미소를 짓는 유령. 내가 이제껏 기록한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두 발을 딛고 선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그를 납득이 가는 동기와 합리적 행동으로 살을 붙여 완성하지도 않았다.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더 유능한 앨로이 키어의 필력에 기꺼이 맡길 생각이다.

The face you saw was a mask and the actions he performed without significance. I had an impression that the real man, to his death unknown and lonely, was a wraith that went a silent way unseen between the writer of his books and the fellow who led his life, and smiled with ironical detachment at the two puppets that the world took for Edward Driffield. I am conscious that in what I have written of him I have not presented a living man, standing on his feet, rounded, with comprehensible motives and logical activities; I have not tried to: I am glad to leave that to the abler pen of Alroy Kear.

3. 제목에 대하여

서머싯 몸은 소설 제목을 선정할 때 비유적인 표현을 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제목을 지었는지 유추가 힘든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 제목이 「케이크와 맥주」인 것에 비해 소설 속에 케이크 또는 맥주라는 소재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메리앤이 숙부와 어셴든의 저녁을 위해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이 나오지만 큰 의미는 없어보이고, 드리필드가 허름한 술집에서 서민적인 음료인 맥주를 즐겨 마셨다는 부분이 나오지만 이것도 뚜렷한 연관성을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해설에서, 케이크와 맥주라는 표현은 ‘쾌락’ 또는 ‘너무 진지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말하는데요. 이 문구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에서 올리비아 백작의 집사 말볼리오를 비꼬는 말에서 나옵니다. 말볼리오는 집사로서 본인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나치게 엄숙하게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올리비아 백작의 집에 놀러와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놀고 있는 토비 경과 앤드류 경을 꾸짖게 되고, 이에 토비 경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사로 응수합니다.

“Dost thou think, because thou art virtuous, there shall be no more cakes and ale?”

“너는 스스로가 덕이 있다고 해서, 세상에 더는 즐거움(케이크와 맥주 같은)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소설 「케이크와 맥주」에서 묘사된 영국 문단 혹은 출판업계는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소설을 내놓아도 잔혹하다며 비판을 받고, 책 그 자체보다는 작가가 유명인사와 친분이 있는지 주요 모임에 초대되었는지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었으며, 선배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서머싯 몸은 이렇게 권위적이고 인위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좋은 책이, 괜찮은 문학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볍고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것을 ‘케이크와 맥주’라는 표현으로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4. 좋은 책이란? 세대를 거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은 어떤 책인지?

「케이크와 맥주」는 소설 속에 소설이 있는 소설이고, 소설을 평가하는 소설입니다. 어셴든과 엘로이는 각자 에드워드 드리필드에 대해 평가하면서, 좋은 소설이란 어떠해야 하며, 좋은 책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합니다.

화자는 에드워드 드리필드, 조지 메러디스, 토머스 칼라일, 윌터 페이터 등이 30년 전에는 이름이 높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싫어했다고 말하며, 30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들의 책들이 이전만큼 좋게 평가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p. 43) 반면 로렌스 스턴의 「트랜스트럼 샌디」, 헨리 필딩의 「아멜리아」,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30년 전에도 지금도 걸작이라고 말합니다. (p. 44) 또한, 재스퍼 기버슨처럼 갑자기 유명 작가가 되었다가 지금은 잊혀진 작가가 있다고도 말합니다. (p. 186)

또한, 불후의 명작이 언론의 외면속에 사장되는 일이 계속되어왔을 것이라 말하며, 한 세대의 책들 중 다음 세대에도 여전히 살아남는 책들은 그 세대의 베스트 셀러 중에서만 살아남는다고도 말합니다. (p. 138-139) 흔히 사람들이 고전과 베스트셀러를 구분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 고전은 이전 세대의 베스트 셀러 중에서만 나오는 것도 같은데요. 주목을 받지 못했던 책이 갑자기 재조명되어 ‘역주행’하는 경우도 간혹 있겠지만 그 사례가 많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5. 드리필드의 두 부인 : 로지와 에이미

‘케이크와 맥주’라는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단연 드리필드의 첫번째 부인인 로지 갠 입니다. 술집 여자 출신이라는 설정이 조금 세기는 하지만, 어쨌든 격의없고 자연스러운 성격의 로지는 드리필드의 곁에 있으면서 그의 ‘뮤즈’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런던 사교계의 속물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사람들과 섞이기 전의 드리필드는 범속하고 흔한 사람들 사이에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사실주의 소설을 성공적으로 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지는 드리필드의 두번째 부인 에이미와 대조됩니다. 에이미라는 이름이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부인의 이름과도 일치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도 같습니다. 에이미는 남들에게 남편을 대단한 작가로 보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대작가를 위해 내조한 현명한 아내의 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남편 사후에는 엘로이 키어와 함께 에드워드를 위대한 작가로 기리는 전기를 쓰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임에서는 로지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로지를 에드워드의 뮤즈로 평가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반면 로지가 ‘원래부터 그런 여자였다’, ‘주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6. 에드워드 드리필드와 토머스 하디

「케이크와 맥주」는 토머스 하디가 작고한 지 2년 만에 출간되었으며 소설 속 인물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하디와 닮은 점이 많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하디를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어왔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많은 작가들이 있었지만, 후기 빅토리아 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는 토머스 하디일 것 같습니다. 하디는 건축업을 하는 (그러니까 젠트리 계급이 아닌)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 살다가 27살에 첫 소설을 쓴 하디는 34살에야 다섯번째 소설인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Far from the madding crowd)」로 성공을 거둡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용어인 ‘클리프행어’는 하디의 네번째 소설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이후 하디는 여러 소설들을 쓰게 됩니다. 「귀향(The Return of the Native)」(1878), 「캐스터브리지의 시장(The Mayor of Casterbridge)」(1886) 등이 대표적입니다. 1890년대는 하디의 전성기이자 세간에 논란이 된 소설들을 쓴 시기였습니다.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와 「이름없는 주드(Jude the obscure)」는 인기를 누리지만 너무 많은 비판을 받은 탓에 하디는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고 1928년에 88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시를 쓰는 데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서머싯 몸은 서문에 자신은 토머스 하디를 조지 메러디스나 아나톨 프랑스만큼이나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p. 9), 여러 정황상 드리필드와 하디는 너무나 닮았습니다. 당시 영국 문학의 거장이자 80대까지 장수한 작가라는 점, 몇몇 소설이 단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뿐인데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는 점 (p. 226, 「생명의 잔」 vs 「테스」, 「이름없는 주드」) 등이 그렇습니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나온다는 점(p. 150, 283)과 드리필드가 신사계급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도 하디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디는 그의 소설들의 무대를 잉글랜드 북서쪽 지방의 시골로 설정하는 일이 많았고 이 지방을 워식스(Wessex) 지방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서머싯 몸은 어셴든과 드리필드의 고향을 잉글랜드 북동쪽 지방 켄트(Kent) 주의 블랙스터블로 설정합니다. 각 작가의 출생지(Dorset과 Kent)와도 연관이 있을 듯한데, 두 지방의 대조 (잉글랜드의 북서부와 북동부)도 참 재밌어보입니다.

7. 엘로이 키어와 휴 월폴

어셴든의 동료 작가인 엘로이 키어는 이해타산적이고 야망이 넘치며 성실하고 수완이 좋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토머스 하디에 대응되듯, 엘로이 키어는 실제 서머싯 몸의 친구 휴 월폴을 저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이 소설이 나오자마자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휴 월폴은 소설이 나왔을 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버지니아 울프는 ‘몸이 그려낸 출세 지향적인 문인의 초상은 고문에 가까운 부분이다. 휴는 벼락출세한 얼굴 두껍고 위선적인 대중작가로 그려지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서머싯 몸은 처음에는 이와 같은 연관설을 부인했지만, 월폴이 죽은(1941) 이후인 1950년에는 엘로이 키어의 모델이 월폴임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다만 이 때에도 드리필드가 하디를 지칭한다는 사실은 부인했습니다.

서머싯 몸이 월폴에 비해 연장자 열 살 연장자이지만, 장수하여 월폴보다 24년 뒤에야 사망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합니다. 서머싯 몸은 이 책에서 ‘위대한 작가란 오래 사는 작가이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서머싯 몸이 월폴에 비해 오래 살았고, 후대에 더 위대한 작가로 남아 본인의 말을 그 삶으로서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8. 발췌

여기서부터는 책의 주요 부분에 대한 발췌입니다. Canada Gutenberg project에서 서머싯 몸의 책에 대한 원문을 무상으로 공개하고 있으므로, 발췌내용에 대한 원문을 병기해보았습니다.

8.1 메리앤의 로지에 대한 평가 (p. 107)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여자에요. 여기 한 시간은 족히 있었는데 단 한순간도 잘난 척을 하지 않네요. … 예전에 꼬맹이였을 때 내가 머리를 빗겨 준 일하며, 차 마시기 전에 자기 고사리손을 씻겨 준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 어머니가 우리랑 같이 차를 마시라고 우리 집에 보내기도 했어요. 그때는 참 그림처럼 예쁜 아이였는데. … 그것참, 사실을 알고보면 다른 여자들보다 유달리 나쁜 여자는 아니라고 봐야죠. 워낙 유혹의 손길이 많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많은 여자들이 로지를 욕하지만 그 여자들도 로지처럼 기회가 많았다면 별수 없었을 거에요.

I don’t ‘ardly know what it is, but there’s somethin’ you can’t ‘elp likin’ about her. She was ‘ere the best part of an hour and I will say that for ‘er, she never once give ‘erself airs. … She remembers everything, how I used to brush her ‘air for her when she was a tiny tot and how I used to make her wash her little ‘ands before tea. You see, sometimes her mother used to send ‘er in to ‘ave her tea with us. She was as pretty as a picture in them days. … Oh, well, I dare say she’s been no worse than plenty of others if the truth was only known. She ‘ad more temptation than most, and I dare say a lot of them as blame her would ‘ave been no better than what she was if they’d ‘ad the opportunity.

8.2 베스트셀러와 고전 (p. 138)

선택된 자들은 대중성을 비웃는다. 그들은 대중성을 평범함의 증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후대 사람들의 선택이 한 시대의 무명작가들이 아니라 유명한 작가들 중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불후의 명작이 언론의 외면 속에 사장되는 일이 계속되어 왔을지 몰라도 후대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알 길이 없다. 또한 후대 사람들이 지금의 베스트셀러를 모조리 폐기 처분하더라도 결국 무엇을 고른다면 지금의 베스트셀러 속에서 고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The elect sneer at popularity; they are inclined even to assert that it is a proof of mediocrity; but they forget that posterity makes its choice not from among the unknown writers of a period, but from among the known. It may be that some great masterpiece which deserves immortality has fallen still-born from the press, but posterity will never hear of it; it may be that posterity will scrap all the best sellers of our day, but it is among them that it must choose.

8.3 아름다움의 한계 (p. 141)

아름다움은 황홀감이고 배고픔만큼이나 단순하다. 이러쿵저러쿵 떠들 만한 거리가 아닌 것이다. 장미 향기와 같아서 한 번 냄새를 맡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것이 예술 비평이 지루한 이유다. 아름다움과 무관한, 즉 예술과 무관한 내용이라면 모르겠지만.

Beauty is an ecstasy; it is as simple as hunger. There is really nothing to be said about it. It is like the perfume of a rose: you can smell it and that is all: that is why the criticism of art, except in so far as it is unconcerned with beauty and therefore with art, is tiresome.

아름다움은 완벽하지만 완벽함은 (인간의 본성상) 사람들의 주의를 잠시 잡아 둘 뿐이다.

Beauty is perfect, and perfection (such is human nature) holds our attention but for a little while.

아름다움은 막다른 골목이고, 한번 도달하면 어디로든 갈 수 없는 산봉우리다.

Beauty is a blind alley. It is a mountain peak which once reached leads nowhere.

아름다움은 심미적 본능을 만족시킨다. 하지만 대체 누가 만족하기를 원하는가? 배부른 것이 진수성찬 못지 않게 좋다는 말은 어리석은 자에게나 해당된다. 아름다움은 지루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Beauty is that which satisfies the æsthetic instinct. But who wants to be satisfied? It is only to the dullard that enough is as good as a feast. Let us face it: beauty is a bit of a bore.

8.4 위대한 작가란 오래 사는 작가이다. (p. 143)

그(드리필드)의 가치는 긴 수명에 있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인류가 가진 가장 바람직한 특성 중 하나인데 이 특성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영국에서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

it was his longevity. Reverence for old age is one of the most admirable traits of the human race and I think it may safely be stated that in no other country than ours is this trait more marked.

곰곰이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 물론 계속 글을 쓰고 대중의 시선 안에 머무는 노작가여야 한다.

After mature consideration I have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real reason for the universal applause that comforts the declining years of the author who exceeds the common span of man is that intelligent people after the age of thirty read nothing at all. As they grow older the books they read in their youth are lit with its glamour and with every year that passes they ascribe greater merit to the author that wrote them. Of course he must go on; he must keep in the public eye.

8.5 트래퍼드 부인이 작가들을 대하는 태도 (p. 191)

늘 매력적이고 상냥했으며 사려깊게 귀를 기울였지만 경계하고 평가하고 이번엔 반드시 우승마에 걸겠다는 결의가 있었다.

At Homes, charming always and gentle, listening intelligently, but watchful, critical, and determined (if I may put it crudely) next time to back a winner.

8.6 어셴든과 로지의 데이트 중 로지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 (p. 203)

로지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뮤직홀에서 저녁 시간을 보낸 뒤 날씨가 좋은 밤이면 걷곤 했는데 둘이 걸어 돌아올 때 그녀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친밀하고 편히 다가왔다. 상대를 배제한 침묵이 아니라 충만한 행복감 안에 상대를 끌어안은 침묵이었다.

She was never a great talker. Often when, the night being fine, we decided to walk back from the music hall at which we had been spending the evening, she never opened her mouth. But her silence was intimate and comfortable. It did not exclude you from thoughts that engaged her apart from you; it included you in a pervasive well-being.

8.7 로지의 인생에 대한 태도 (p. 224)

그럼 된거야. 안달하고 질투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 안돼? 기회가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지.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

Well, then. It’s so silly to be fussy and jealous. Why not be happy with what you can get? Enjoy yourself while you have the chance, I say; we shall all be dead in a hundred years and what will anything matter then? Let’s have a good time while we can.

8.8 트래퍼드 부인의 에이미에 대한 태도 (p. 251)

바턴 트래퍼드 부인을 가리켜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만약 그 인정에 독이 녹아 있을 수 있다면 나는 이 경우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I think it may be not unjustly said that Mrs. Barton Trafford fairly ran over with the milk of human kindness, but all the same I have an inkling that if ever the milk of human kindness was charged with vitriol, here was a case in point.

8.9 드리필드가 즐겨 찾았던 허름한 술집에서의 맥주. 드리필드의 소탈한 성격 (p. 256)

그 양반이 여기 들러 흑맥주를 한 잔씩 하는 걸 아주 좋아했거든요. 퍼마신 건 아니고 그저 바에 앉아 얘기하는 걸 좋아했지요. 세상에, 한번 말을 시작하면 한 시간이고, 상대도 가리지 않았어요.

He used to be very partial to dropping in here and having his glass of bitter. Mind you, I don’t say he ever got tiddly, but he used to like to sit in the bar and talk. My word, he’d talk by the hour and he never cared who he talked to.

재미난 양반이었어요. 격을 두지 않았죠. 런던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았나 보더라고요. 돌아가셨을 때 신문이 온통 그 양반으로 도배된 걸 보면 말이죠. 하지만 그 양반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었어요. 나나 당신처럼 그냥 아무개처럼 느껴졌거든요. 물론 우리는 그 양반을 편히 모시려고 했죠. 안락의자에 앉으시라고 해도 굳이 카운터에 앉았어요. 발이 벽 몰딩에 닿는 느낌이 좋다면서. 자기는 바가 좋다고 늘 말했어요. 거기에서 인생이 보인다고. 그리고 자기는 늘 인생을 사랑한다고.

He was a funny old fellow. No side, you know; they tell me they thought a rare lot of him in London and when he died the papers were full of him; but you’d never have known it to talk to him. He might have been just nobody like you and me. Of course we always tried to make him comfortable; we tried to get him to sit in one of them easy chairs, but no, he must sit up at the bar; he said he liked to feel his feet on a rail. My belief is he was happier here than anywhere. He always said he liked a bar parlour. He said you saw life there and he said he’d always loved life.

8.10 어셴든이 생각하는 드리필드의 실체 (p. 272)

남들에게 보이는 얼굴은 가면이었고 그의 행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실체는 죽을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존재였고, 그의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 사이를 조용히 오가는 유령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에드워드 드리필드라 여기는 두 꼭두각시에게 냉소적이고 초연하게 미소를 짓는 유령. 내가 이제껏 기록한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두 발을 딛고 선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그를 납득이 가는 동기와 합리적 행동으로 살을 붙여 완성하지도 않았다.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더 유능한 앨로이 키어의 필력에 기꺼이 맡길 생각이다.

The face you saw was a mask and the actions he performed without significance. I had an impression that the real man, to his death unknown and lonely, was a wraith that went a silent way unseen between the writer of his books and the fellow who led his life, and smiled with ironical detachment at the two puppets that the world took for Edward Driffield. I am conscious that in what I have written of him I have not presented a living man, standing on his feet, rounded, with comprehensible motives and logical activities; I have not tried to: I am glad to leave that to the abler pen of Alroy Kear.

8.11 작가는 글을 쓰면서 얻는 보상은 망각이다. (p. 295)

작가의 삶이란 가시밭길이다. 우선 가난과 세상의 냉대를 견뎌야 한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서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대중에 휘둘린다. //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 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든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I began to meditate upon the writer’s life. It is full of tribulation. First he must endure poverty and the world’s indifference; then, having achieved a measure of success, he must submit with a good grace to its hazards. He depends upon a fickle public. … But he has one compensation. Whenever he has anything on his mind, whether it be a harassing reflection, grief at the death of a friend, unrequited love, wounded pride, anger at the treachery of someone to whom he has shown kindness, in short any emotion or any perplexing thought, he has only to put it down in black and white, using it as the theme of a story or the decoration of an essay, to forget all about it. He is the only free man.

9. 후기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마치 래퍼들이 디스전을 벌이듯, 선대의 작가 토머스 하디와 동시대 작가 휴 월폴을 비판하는 서머싯 몸의 태도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인지’가 있으면 ‘메타인지’가 있듯, 물리physics가 있으면 메타물리metaphysics가 있고 논리학logic이 있으면 메타논리학metalogic이 있듯, 이 소설은 마치 ‘메타문학meta-literature’과 같은 소설이 아니었나, 그래서 더 재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참고한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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